사녀(1969) 희귀/고전 호러 영화




1969년에 신상옥 감독이 만든 호러 영화.

내용은 상감의 명을 받들어 불상을 조각하기 위해 필요한 나무를 구하기 위해 스승과 함께 백사산을 찾아간 불사(불상 조각가) 성도가 갑자기 내린 폭우로 동굴에서 하룻밤 묵어가려 했는데, 그때 백사산에 사는 천년 묵은 뱀 요괴 백사가 나타나 스승을 죽이지만 성도는 살려서 보내주고.. 그 이후 성도가 묘령의 여인 백랑을 아내로 맞이해 가정을 이루고 불상을 조각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이 작품은 1960년에 신상옥 감독이 만든 백사부인을 리부트한 것과 같다. 하지만 백사가 인간으로 변신해 인간과 사랑을 하는 소재와 해피엔딩 결말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 다르다.

일단 전작은 요괴물의 탈을 쓴 멜로물이지만 본작은 거기에 호러 요소를 추가했다. 본작에 나오는 백사는 원작의 백사랑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호러 코드가 강화됐다.

근데 그게 오리지날 호러는 아니다. 1964년에 고바야시 미사키 감독이 만든 영화 ‘괴담’에 나오는 설녀편을 도용했다.

설녀편을 전부 다 도용한 것은 아니고, 설녀편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설녀 설정과 거기서 나온 첫 장면과 끝 장면을 베꼈다.

작중에 백사가 성도의 목숨을 살려주면서 한 대사를 보면 ‘너는 젊고 잘생겼으니 살려주겠다. 다만, 오늘 여기서 날 본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면 죽이겠다.’

이런 내용인데 이게 괴담에 수록된 설녀편에 나온 것과 거의 똑같다. 설녀편에서는 주인공이 할아버지와 같이 자고 있다가 설녀를 만나 할아버지는 죽고 본인이 살아남았는데 본작에서는 그게 스승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우리나라 설화 구미호도 요물과 인간의 사랑을 그린 이야기고 자신의 정체를 남에게 발설하면 죽인다는 내용이 그대로 나오긴 하지만 본작에서 주인공의 목숨을 살려준 동기와 그때 나온 대사가 괴담 설녀편의 그것과 똑같으니 이건 어떻게 실드를 칠 수가 없다.

작중에 성도가 옛날에 백사를 만났던 이야기를 하다가 말은 씬과 기어코 백사의 정체를 밝혀내서 그녀로 하여금 약속을 깼으니 널 죽여야겠다!란 대사까지 치게 했다가 어린 아들이 부르는 소리를 듣고 끝내 성도를 죽이지 못하고 홀로 떠나는 씬은 설녀편의 마지막 장면을 두 파트로 나누어 놓은 것이다.

백사의 설정만 놓고 보면 설녀와 같고 대사, 연출까지 그대로 가져다 썼으니 빼도 박도 못하지만.. 그래도 도용한 부분은 거기까지고 그 이외에 다른 건 전부 다르다.

일단 본작에서는 성도가 백사산에서 가지고 온 명목으로 불상을 조각하는데 완성 직전에 불상의 눈을 만들지 못해 고민하고, 새로 부임한 사또와 그가 데리고 온 유명한 불사 문경이 성도가 하는 일을 방해하고 대립한다.

백사 또한 지옥 마왕이 보낸 자객이 둔갑한 도사와 맞붙어 싸우고, 마왕의 명에 따라 성도의 불상 조각을 방해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불화가 갈등을 겪고 사랑에 번민하는 등등 남녀 주인공 모두 고난을 겪으니 전작보다 훨씬 깊이가 있어졌다.

호러 요소가 추가된 만큼 작중에 나오는 백사는 꽤 으스스하게 묘사된다. 뱀으로 변신할 필요가 없이, 설녀처럼 시퍼런 조명을 받으며 서슬퍼런 눈빛을 빛내며 다가오는데 본작에서 백사 배역을 맡은 김혜정의 연기력이 정말 출중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지금 시점에서 보면 작중에 벌어지는 요력 대결이다. 작중 백사는 입에서 연기 뿜는 것까지는 그렇다 쳐도 빔을 쏘며 싸우고, 그에 맞선 마왕의 자객은 삿갓을 던지자 그물이 되어 백사를 옭아매고 그 뒤에는 빨강, 파랑 빛이 되어 치고 박고 싸운다. 아무래도 70년대 영화다 보니 이 판타지 연출 부분은 좀 유치하게 보인다.

그래도 막판에 백사가 지옥 마왕에게 받은 여의주로 해일을 일으켜 금산사를 덮칠 때의 연출은 나름대로 멋졌다. 아마도 미니어쳐 건물에 물을 부어서 휩쓸어 버린 것 같은데 재난물 느낌이 물씬 풍긴다.

결말은 전작과 같은 해피엔딩이다. 약간 다른 내용이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관음보살의 불교 파워로 다 해결되는 결론은 똑같다.

결론은 추천작! 비록 일본 영화를 부분적으로 베끼긴 했지만 전작 백사부인보다 재미와 완성도가 한층 업그레이드 된 작품이다.

여담이지만 신상옥 감독이 이후에 만든 영화 ‘이조괴담’도 일본의 요괴 고양이 괴담을 가져다 썼다.

덧붙여 신상옥 감독이 같은 해에 만든 천년호에서 나온 여우 귀신은 지옥 마왕의 명을 받고 천년 동안 1000명의 사람을 잡아먹고 육천 세계를 지옥으로 만든 다음 하늘로 올라가려 하는 요괴인데.. 이 작품의 백사도 지옥 마왕의 명을 받고 움직이는 요괴라서 어쩌면 마왕이 같은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신상옥 감독의 요괴 월드일지도)

추가로 이 작품은 1969년에 나카가와 노부오 감독이 만든 영화 ‘괴담 사녀’하고는 관계가 없다. 그리고 본작으로부터 1년 후인 1970년에 나온 ‘사녀의 한’ 역시 전혀 다른 작품이다.



덧글

  • 잠본이 2013/07/19 22:30 # 답글

    역시 젊고 잘생긴 놈이 이기는 거군요(어이)
  • 애쉬 2013/07/21 09:24 # 답글

    어딘가 전 세계가 다 닮은 구전설화의 세계를 생각해보면...

    저작권(상업적인 배타적 사용권) 세상의 야박함(?)은 요즘의 신 풍속도인듯...

    좋은게 있으면 적절히 가져와 써주는 훈훈한 월드는 이제 안녕이군요^^
  • 잠뿌리 2013/07/24 20:39 # 답글

    잠본이/ 요괴들도 외모로 사람 차별하는 세상 같습니다.

    애쉬/ 세계 각지에 비슷한 구전 설화는 많은데 대사까지 가져다 쓰는 저런 건 좀 노골적이지요 ㅎㅎ 차라리 그냥 한국식 구미호처럼 했다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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