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반게리온 Q(エヴァンゲリオン 新劇場版.2013) 2013년 개봉 영화




2013년에 안노 히데아키 감독이 만든 에반게리온 신 극장판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

내용은 서드 임팩트기 일어난 후 14년 뒤에 에바 초호기와 함께 동결 상태에 들어갔던 신지가 반 네르프 단체 뷔레의 전함 운더에서 눈을 뜨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에반게리온: 서에서 TV판을 정리하고 에반게리온: 파에서 주인공 이카리 신지가 용자왕으로 거듭나는 성장을 이룩해 냈지만 이번 에반게리온 Q에서는 기존의 성장을 깡그리 무너트려 초기화시켰다.

에반게리온 TV판부터 봐 온 올드 팬들에게 친숙한 킹 오브 잉여. 찌질이의 왕. 병신지가 돌아온 것이다.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 테마가 귓가를 울리며 왕, 아니 병신지의 귀환에 전율했다.

혹자는 신지에게 동정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신지의 찌질함에 치를 떨며 주인공인데도 불구하고 마구 패버리고 싶은 욕구가 샘솟았다. 그래. 이게 바로 병신지 퀄리티지. 온갖 어그로를 다 끄는 잉여 찌질이 주인공 신지. 에반게리온: 파를 보고 잊고 있던 신지의 본 모습을 떠올리게 됐다.

신지의 개 잉여 찌질이가 된 만큼 이번 작의 분위기나 느낌은 TV판으로 완전 회귀했다. 에반게리온: 파에서 보여준 열혈, 근성은 없다.

서드 임펙트 후 황폐화된 세계에 소수의 생존자, 민간인들이 모인 뷔레와 네르프의 대결 구도, 인류 보완 계획의 막바지에 이르러서 벌어지는 거대한 음모 등 에반게리온이 본래 품고 있던 현실은 시궁창 세계의 정점에 이르고 있다.

이번 작품은 완결편이 아니고 이 다음에 나오는 게 신 극장판 최종화라서 그런지, 그 최종화를 위한 징검다리 내지는 마지막 도약을 위한 뜀틀 같은 느낌을 준다.

극장판을 본 게 아니라, 극장판 퀼리티로 만든 TV판 서너 편. 또는 총집편을 본 기분이다. 당연히 액션이나 스케일 뭐 하나 만족스러운 게 없다.

나기사 카오루와 신지의 BL을 연상하는 우정을 넘어선 뭔가만 잔뜩 나와서 거부감이 들었다. 쓸데없이 긴 피아노 합주 씬도 그렇고 말이다.

극중 신지는 잉여하고 찌질하지만 뷔레 멤버들도 잘한 건 없다. 신지한테 14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상황 설명을 제대로 해주는 애가 없다.

필요한 최소한의 설명도 하지 않은 채 경계하고 차갑게 대하니 애가 삐딱해져서 안 그래도 잉여하고 찌질한데 더 병신 같아진 것이다. 자기들끼리만 알고 불라불라 거리지 말고 좀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정보 공유를 해야지 이게 대체 뭔 헛짓거리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사실 그렇다고 이 정도보고 멘붕을 일으킬 수는 없다. TV판으로 치면 24화. 구 극장판으로 치면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 전반부다. 이 다음에 이어질 게 TV판 25~26화.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 후반부라는 걸 생각하면 멘붕 포인트를 아껴놓아야 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안도 히데아키 감독은 선택의 기로에 놓인 듯 싶다. 아니, 감독 자신이 아니라 에반게리온 그 자체에 대한 운명의 갈림길이다.

여기서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 루트로 돌입하면 이 시리즈는 과거로 회귀해 발전 없이 정체된 채로 팬들에게 멘붕 임팩트를 선사하고 끝난다.

하지만 전작 에반게리온: 파처럼 새로운 루트를 파고들면 이 시리즈를 완벽하게 끝냄과 동시에 애니메이션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나마 이런 작은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된 것은 아스카 덕분이다. 라스트씬은 확실히 TV판이나 구 극장판에는 나오지 않았던 희망의 빛줄기다.

구작에서 서드 임팩트 발생 이후 결코 이루어지 않았던 트리오 재결성 그 자체가 다음 작을 기대하게 하는 요소가 됐다.

독안룡 아스카, 블랙 아야나미 레이(아마도 세 번째가 아닐까 생각해), 해적왕.. 아니 찌질왕 병신지. 과연 이 3인의 소년 소녀들은 어떤 운명을 맞이할 것인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캐릭터는 마리지만 이 작품에서 믿을 만한 건 아스카 밖에 없다. 한국으로 치면 바보 온달과 평강 공주에게 세계의 운명을 맡긴 것이라고 할까. 아스카가 병신지를 얼마나 잘 끌고 갈 수 있느냐에 따라서 모든 게 결정될 것 같다.

결론은 미묘. 이 작품 하나만 놓고 보면 에반게리언: 파에서 이뤄낸 모든 걸 초기화시켜서 기대한 만큼의 재미가 없지만 앞으로 나올 신 극장판 최종화를 기대하게 한 것은 좋게 보고 싶다.

이 작품이 망작이 되느냐, 아니면 완전무결한 최종화를 위한 밑거름이 되었느냐는 뒤편을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여담이지만 이 작품에서 신지x카오루의 BL 커플링을 지나칠 정도로 밀어줘서 홍보 포스터의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라는 문구가 그걸 의미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에바를 본 지 벌써 18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나기사 카오루의 BL 테이스트는 부담스럽고 거부감이 강하게 느껴진다. 단, 부녀자라면 열광해서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덧붙여 아이언맨3와 에반게리온Q를 다 보려는 사람이 있다면 에바Q 먼저 보고 아이언맨3를 보는 걸 추천한다. 에바Q를 보고 불완전연소 됐다면 아이언맨3가 힐링을 해줄 것이다.



덧글

  • LONG10 2013/04/26 14:14 # 답글

    BL에 소양이 있는 남정네다보니 Q의 작품 포인트에서 어머머(?)하며 봤습니다.
    역시 평범한 남성분들은 거부감을 떨칠 수는 없는 모양이네요.

    그럼 이만......
  • 눈물의여뫙 2013/04/26 15:30 # 답글

    역시 성장하는 듯 하다가 막장으로 떨어지고 마는 이카리 신지의 퀄리티이지만.

    안노 히데아키도 잘 나가는 스토리를 개막장으로 꼬아버리는 게 종특이라서 그런지 뭐.(결국 다음 편 나오기 전까지 Q는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에 필적하는 쓰레기로 간주하기로 했지만. 다음편 나오더라도 개연성 영 괴상하게 돌아가는 건 어쩔 수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이게 에반게리온인지 그렌라간인지 구별 안 되는 뜬금없는 최종보스와의 전개더라도 차라리 신지가 아스카와 함께 오그라드는 대사들을 열혈스럽고 진지하게 토해내면서 안티 스파이럴... 아니 제레를 드릴... 아니 롱기누스의 창으로 뚫어버리는 그 편이 스토리 완성도가 훨씬 높을 것 같은 생각입니다.
  • Grendel 2013/04/26 16:33 # 답글

    '파'에서 '이건 에바가 아닌 느낌인데?'라고 생각했고, 'Q'에서 '그럼 그렇지.'가 되었습니다.
  • 블랙 2013/04/26 20:21 # 답글

    저는 아이언맨3를 먼저 보고 흥분시킨 감정을 Q를 그다음으로 봐서 식혔습니다..

    사실은 시간상 조조 할인으로 볼수 있는게 아이언맨3 뿐이었고 Q는 조조를 너무 일찍해서 나중에 볼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지만.
  • 어벙 2013/04/26 22:29 # 답글

    안보길 잘했다고 생각하는 사람 추가요.
    물론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 이후로 극장판을 기피했던 것은 사실이지요.
    극장판 결말이 나왔다고 해도 앞으로는 보지 않을 생각이에요.
  • 기사 2013/04/26 23:01 # 답글

    애초에 이 만화 자체가 처음 tv판을 만들때의 기획 컨셉만 그럴싸했지 그 이후에는 염세주의와 종말론적 주제, 그리고 판타지적 요소를 적당히 섞어서 캐릭터 장사질로 팔아먹은 만화라 참신한 컨셉외에는 별로 권장하고 싶진 않은 작품입니다.
    극장판은 차라리 오리지널 구도로 갈려면 원래 기획안 주제였던 주제인 밝은 미래로 향해 나아가야지 이건 뭐 븅신도 아니고.....
  • 어벙 2013/04/27 03:50 #

    엔드 오브 에바가 우울함과 찌질파워 끝판이었죠.왜 굳이 찌질파워를 보여주는지 모르지만요.
  • 잠뿌리 2013/05/01 02:05 # 답글

    LONG10/ 사실 원작 TV판 때부터 그게 너무 심해서 일반인한테 멘붕을 일으켰지요.

    눈물의여뫙/ 에바로 시작해서 그렌라간으로 끝내는 게 차라리 나을 것 같습니다.

    Grendel/ 파는 그래도 재미라도 있었지요. Q 뒤에 나올 최종화가 어떻게 될지 궁금합니다.

    블랙/ 반대로 감상하셨나보네요. 데미지가 클 것 같습니다.

    어벙/ 신 극장판 최종화가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처럼 되면 진정한 충격과 공포가 느껴질 것 같습니다.

    기사/ 적어도 바로 전작 에반게리온 파에서는 희망적인 느낌도 줬지만 이번 Q는 절망으로 가득 찼지요.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통계 위젯 (화이트)

617802
5243
9469794

메모장

잠뿌리의 트위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