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령의 곡(1980) 희귀/고전 호러 영화




1980년에 꼬마 신랑의 한, 백골령의 마검 등 한국 호러 영화를 만들어 온 박윤교 감독이 만든 호러 영화.

내용은 부호 김만호의 아들 김태화는 5대 독자인데 조부가 병상에 누워 있어 하루라도 빨리 증손을 보고 싶어 해서 태화의 어머니가 칠성을 드리다가 절에 있는 여자 행자 점례를 보고 며느리로 맞아들이는데, 임신에 성공한 점례의 난소에 혹이 있어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나 그러면 뱃속의 아이를 지워야 한다고 해서 시어머니가 결사반대를 하여 결국 아이를 낳고 죽었지만 행자 시절 몸을 담았던 절 승가사의 양지바른 곳에 묻어달라는 유언마저 지켜지지 않아서 원한에 사무친 귀신이 되어 나타나 주변 사람들과 시댁 식구들에게 복수하는 이야기다.

한국의 고전 호러 영화는 가부장제의 폐단, 고부간의 갈등이 주제로 많이 나왔는데 이 작품도 그런 케이스다. 그런 주제하면 며느리 귀신이 또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본작의 주인공은 사실상 며느리 귀신 점례다.

80년대 영화다 보니 촬영 기술이 발달되어 있지 않고 예산도 적게 들은 듯 귀신이 나와도 변변한 특수 효과 한 번 나오지 않는다.

작중에 계절이 바뀌는 연출도 창문 밖에 나무 하나 세워 놓고 낙엽, 눈발, 물 등을 뿌려서 사계절이 지나가는 식으로 표현한다. 자동차 충돌 사고 같은 씬도 차가 토관과 부딪쳐 화약이 터지는 것 정도로 연출한다.

지금 보면 연출이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지만, 귀신에 대한 표현 자체는 당시 한국 호러 영화의 붐을 일으킬 만큼 표준을 제시하고 있다.

하얀 소복을 입은 점례의 귀신은 긴 머리를 풀어 헤친 채로 산 사람들 앞에 나타나 눈앞에서 기웃 기웃거리다가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극 후반부가 되면 실체를 드러내 직접적인 공격을 가해오지만 그 전까지는 사고가 발생하도록 유도하거나, 상대를 미치게 하는가하면 빙의까지 하는 등등 다양한 심령 공격을 가한다.

스토리상으로는 별 의미는 없지만 점례의 비극적인 운명을 암시하듯 절의 지옥도를 클로즈업하면서 빨강, 파란 조명을 번갈아가며 비추거나, 점례가 머리카락이나 식칼 같은 걸 입에 물고 눈빛을 번뜩이는 씬 등은 나름대로 잘 살렸다.

클라이막스에 등장한 주지 스님의 퇴마행도 인상적이다. 말로 달래서 성불시키려다가 수틀리니까 ‘이것이 나의 업보구나’라면서 손에 끼고 있던 염주를 투척해 공격하고, 염주 목걸이를 목에 걸더니 불경을 외워 퇴마하는데 진짜 이런 걸 보면 한국 호러 영화의 클래식답다.

여곡성도 그렇지만 한국 호러 영화의 하일라이트는 불교 파워로 귀신을 물리치는 씬이 아닐까 싶다.

다만, 스님이 던진 염주 맞은 점례 귀신이 데미지를 입었다는 걸 어째서 백 덤블링 3회전으로 표현한 건지 모르겠다. 이조괴담도 그랬는데 한국 호러 영화에서는 처녀 귀신이 덤블링을 하는 경향이 있다. (구미호도 아닌데 말이다)

스토리상으로 몇 가지 이해가 안 가는 점도 조금 있다. 점례가 그렇게 살고 싶어 했는데 결국 출산을 하고 죽었지만 자식에 대한 모성애가 전혀 남아 있지 않아서 수십 년 동안 김씨 가문을 저주하고 괴롭히면서 장성한 자기 아들까지 농락한 것. 그리고 사실 남편인 태화는 사태를 수수방관하긴 했지만 그래도 점례의 유언을 들어주려 했는데 직원들이 일이 힘들다며 엉뚱한 곳에 묻어버려 사태가 이 지경이 됐는데 갑자기 몰살 루트로 진행되는 것 등이다.

뭔가 작중 등장인물의 죽음에 대한 당위성이 조금 떨어진다고나 할까. 거기다 작중에 벌어진 사태와 연관된 회사 직원, 병원쪽 관계자 전부 몰살당한 뒤 갑자기 20년의 세월이 흐른 다음의 김씨 집안 이야기가 나와서 이 부분도 좀 갑작스러웠다.

음악 같은 경우는 일반 파트에서 완전 무슨 명랑, 청춘 영화에나 나올 법한 경쾌한 음악이 나와서 그 부분만 보면 호러 영화인지 일반 영화인지 분간이 안 간다.

효과음이 그나마 호러 영화다운데 전화벨 소리와 새 소리가 기억에 남는다. 새 소리의 경우 본래 점례가 승가사에 살고 있을 때 새 소리가 들리면 자기 입으로 새 소리를 따라서 부르는데 작중 이 두 가지가 귀신이 나오거나 심령 현상이 발생하는 징조와 같이 나온다.

결론은 추천작. 스토리의 디테일함이 떨어지는 게 조금 아쉽긴 하지만, 서스펜스나 스릴러 요소가 전혀 없이 현대 배경의 순수 귀신물로서 당시 한국 호러 영화의 새로운 트렌드를 만든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여담이지만 이 작품은 한국 영상자료원에서 VOD로 서비스되고 있다. 관람료는 500원으로 화질도 좋고 모니터 전체 화면으로 감상할 수 있다. (후속작인 망령의 웨딩 드레스도 한국 영상자료원 VOD로 있다)



덧글

  • 먹통XKim 2013/04/07 20:07 # 답글

    비디오로는 무지무지 드문 영화라서 10여년전 호러영화 동호회 상영회로 가끔 상영하곤 했죠
  • 잠뿌리 2013/04/16 11:31 # 답글

    먹통XKim/ 한국 영상 자료원이 비디오로도 구하기 힘든 작품을 VOD로 서비스하는 게 가뭄의 단비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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