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플갱어 (Doppelganger.1993) 사이코/스릴러 영화




1993년에 애비 네셔 감독이 만든 호러 스릴러. 90년대 당시에는 아역 배우 출신으로 E.T, 초능력 소녀의 분노, 우리 딸은 못 말려, 캐츠 아이 등에 출연해 잘 알려진 드류 베리모어가 주연을 맡았다.

내용은 성년이 된 홀리 구딩은 엄청난 재산을 물려받은 상속녀인데 부모님이 모두 죽고 하나 뿐인 남동생은 다쳐서 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죽거나 결국 홀로 남아 LA로 건너가 가난한 무명작가 패트릭 하이마스의 룸메이트로 들어가 동거를 하게 되지만, 자칭 자신의 영혼의 쌍둥이라는 도플갱어에 의해 주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이 작품은 기본적으로 도플갱어를 통해 히로인 홀리의 선한 면과 악한 면이 나뉘어져 있고 어떤 음모에 의해 연쇄 살인 사건이 벌어지는 스릴러다.

인간의 이중성은 스릴러의 단골 소재다. 이중인격 살인마는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사이코에 나오는 노먼 베이츠를 시조로 삼아 정말 셀 수 없이 많이 나왔다.

이 작품도 언뜻 보면 이중인격 살인마가 나오는 기존에 나온 스릴러 영화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오히려 스릴러 영화로서의 수준은 약간 떨어지는 편이다.

홀리는 도플갱어가 존재한다고 주장하며 헛소리를 해 주위에서 미친 년 취급을 받고, 홀리의 도플갱어는 연쇄 살인을 저지르며, 경찰은 진짜 홀리를 의심한다.

주인공 패트릭은 거기서 혼란을 느끼고 홀리를 어떻게 구제할 수 있는지 영화 전반에 걸쳐 우왕좌왕하고 있다.

홀리는 홀리대로 클럽에서 야하게 차려 입고 섹시 댄스를 추거나, 패트릭을 유혹해 붕가붕가를 하는가 하면 자신의 주치의 닥터 힐러와 육체적 관계를 맺는 등 방종하고 타락한 모습을 잔뜩 보여주면서, ‘그건 내가 아님. 도플갱어 소행임’이러고 앉아 있다.

주인공은 무능하고 히로인은 그저 섹스어필만 해대니 스토리가 제대로 굴러갈 리가 없다. 이 문제가 극 후반부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으니 스릴러로서의 퀼리티가 낮아진 것이다.

사실 이 작품은 스릴러 장르인데도 불구하고 오컬트, 크리쳐 호러의 요소를 담고 있다. 주객전도가 된 듯 스릴러보다 그런 부차적인 요소들로 공포를 안겨준다.

극중 홀리가 샤워를 하고 있는데 샤워기에서 나오는 물이 핏물로 변한다거나, 패트릭이 꿈에서 양손바닥에 못이 박혀 십자가의 형상으로 벽에 매달린 홀리를 보고 구해주려고 하는데 그녀의 도플갱어에게 습격을 당하는 씬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런 초자연적인 설정과 장면에 집착하느라, 본 작을 스릴러로 결말을 내야 할지, 오컬트로 결말을 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면서 전체 스토리의 완성도가 무너져 내렸다.

이걸 한국 민담으로 풀면 이런 식이다. 살인 사건의 용의자가 ‘저는 범인 아님. 여우가 저로 변신해서 살인한 거임.’ 이렇게 주장하자 주인공이 무당 혹은 지나가는 스님을 찾아가 ‘여우를 퇴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고 물어보는 거다.

왜 살인 사건이 벌어졌고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고, 무엇을 해야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지 그 어떤 고찰도, 노력도, 추리도 하지 않는다. 그러니 주인공이나 히로인이 살인마의 위협에 직접적으로 노출되는 장면이 거의 나오지 않고, 아무도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지 않으니 결국 살인마가 죽일 사람 다 죽여 놓고 대참사가 끝난 뒤에야 비로소 결말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타는 거다. 스스로 쌀을 씻고 밥을 지어서 먹는 게 아니라 결국 다 된 밥에 숟가락을 얹는 격이다.

그 때문에 사실 이 작품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은 홀리 구딩 도플갱어 사건을 조작한 흑막의 정체가 밝혀지는 부분이 아니라, 그 흑막조차 예상하지 못한 초자연적인 반전이다.

사건의 흑막은 그저 이 작품의 난잡하고 개연성 없는 스토리를 대사로 깔끔하게 정리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 뒤에 상황을 정리하는 건 도플갱어다.

본래 도플갱어는 독일의 오래된 전설에 전해지는 존재로 독일어로 ‘이중으로 돌아다니는 사람’이란 뜻을 가지고 있으며 그 정체는 사람의 분신 혹은 또 다른 자신, 생령 따위 등으로 사람이 자신의 도플갱어를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죽어 버린다는 무서운 이야기다.

본 작에서는 거기에 오컬트적인 설정을 가미해 현실과 사후 세계의 중간을 방황하는 존재로, 실체를 갖고 ‘존재’하고 싶은 의지와 의심하는 마음이 강하며 한 번 갈라지면 다시 합치기 싫어하지만 ‘사랑’이 있으면 다 해결된다고 한다. 사랑 만능주의의 손발이 오그라드는 대사가 실제 설정이 돼서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되니 진짜 혹평을 받지 않으면 그게 이상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또 시각적 충격과 함께 공포를 선사한 건 바로 도플갱어의 실체다.

정말 뜬금없고 억지스러운 상황인 건 사실인데 극중 홀리가 도플갱어로 변신하는 걸 리얼 타임으로 보여주는데 그 임펙트가 장난이 아니다.

사람 몸이 꽈배기처럼 비비 꼬이면서 붉은 지렁이가 되더니 그 안에서 두 마리의 도플갱어가 튀어 나오는 전개로, 큰 키에 뼈와 혈관만이 남은 기괴한 해골귀의 모습을 하고 눈꺼풀과 속눈썹 대신 작은 이빨이 촘촘히 박힌 눈을 깜빡이며 괴성을 지르며 다가오는 걸 보니 순간 너무 놀라 멘탈 붕괴를 일으킬 뻔 했다.

1995년작 야수의 날에서 초중반까지 웃으며 잘보다가 중반부에 중대한 반전이 일어났을 때 웃음기가 싹 가시고 몇 분동안 아무런 리액션도 하지 못한 채 굳어 있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결론은 미묘. 오컬트와 스릴러, 두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는 것도 아니고 어떤 토끼를 잡을까 고민하다가 결국 다 놓치고 망해버린 작품이다. 그런데 스릴러 영화로 접근하면 분명 망작이지만 ‘크리쳐’ 영화로 접근하면 또 다르다. 본 작 클라이막스에 나온 도플갱어의 묘사나 충격적인 비주얼은 크리쳐 호러물로 보면 손에 꼽을 만 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스릴러보다 크리쳐물로 그런 소재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권해주고 싶다.

여담이지만 드류 베리모어가 이 작품을 촬영할 당시의 나이는 18살이다. 아역 배우 출신으로서 이런 작품에서 첫 성인 연기를 시도한 게 본인에게 있어 흑역사가 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 연기를 해서 다양한 작품에 출현하고 그 이름을 널리 알린 것을 보면 나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덧글

  • 시몬 2012/08/17 00:46 # 삭제 답글

    도플갱어는 이중인격이나 정신분열같은 일종의 질병과 관련있는거라고 생각했는데, 뜬금없이 왠 붉은 구더기가 삐쩍마른 해골로 변하더니 뼈다귀만 남은 손으로 펀치를 날려 주변사물을 부수더군요. 무섭진 않았는데 하도 황당해서 어이가 없었습니다. 무슨 섹시코만도오의를 보는듯한 느낌이었죠.

    그나저나 야수의 날을 보고 저랑 똑같은 경험을 하셨구만요...그 중반부의 반전은 진짜 지금 생각해도 기가 막힙니다. 그 반전때문에 미치광이 신부의 슬랩스틱 자뻑 개그쇼가 세계의 운명을 건 한판승부의 레이스로 바뀌니까 말입니다.
  • 제드 2012/08/17 14:48 # 답글

    으흠. 옛날 TV에서 본적이 있었는데 뭔질 모르겠더니 역시 망작이었군요
  • 떼시스 2012/08/18 09:05 # 답글

    여러 영화에 출현한것을 봤지만 이티,스크림1,미녀삼총사정도가 기억이 나네요.
  • 잠뿌리 2012/08/18 16:59 # 답글

    시몬/ 완전 데우스 엑스 마키나였지요. 정말 뜬금없이 튀어 나왔습니다. 야수의 날에 나온 반전은 지금까지 본 영화 중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멋졌지요.

    제드/ 드류 베리모어의 흑역사지요.

    떼시스/ 한국에서 드류 베리모어하면 보통 그 세작품을 꼽지요 ㅎㅎ 도플갱어 이후 야성녀 아이비나 나쁜 여자들에도 나왔지만 인지도를 생각하면 앞의 세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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