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Legend.1985) 판타지 영화




1985년에 에일리언, 블레이드 런너 등의 SF 영화로 유명한 리들리 스콧 감독이 필모 그래피 처음으로 만든 판타지 영화. 톰 크루즈가 주연을 맡았다.

내용은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인 잭이 숲에서 동물들과 함께 살면서 유니콘을 발견해 보호하고 있는데, 릴리 공주와 사랑에 빠져 그녀에게 유니콘을 보여줬다가 그 때를 노린 사악한 고블린들이 유니콘의 뿔을 잘라가자 세계가 겨울의 눈 속에 갇혀 버리고 어둠의 제왕이 활개 치는 가운데 잭이 요정들과 함께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다.

이 작품은 당시 나이 23살이었던 톰 크루즈가 잭 역할로 출현해 눈부신 외모를 뽐냈고 리들리 스콧 감독이 야심차게 준비한 작품으로 무려 3천만불이라는 엄청난 예산을 투자해 만든 만큼 아름다운 비주얼을 자랑한다.

꽃가루가 휘날리고 따스한 햇살이 비추는 꽃밭과 보슬비 내리는 강가, 숲을 배경으로 뛰노는 암수 한쌍의 유니콘, 눈 덮인 숲속에서 무수한 버블과 함께 나타난 요정 무리 등등 진짜 비주얼 하나만 놓고 보면 예술에 경지에 가까울 정도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극대화시켜 인간과 요정이 공존하는 판타지 월드로 구축했다. 이런 작품이 특수효과나 CG가 크게 발달하지 않은 80년대 중반에 나왔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대단하다. 현대의 디지털로는 구현할 수 없는 아날로그의 아름다움이 눈부시게 빛나서 3천만불이나 되는 예산에 걸맞는 결과물이다.

문제는 이 작품의 장점은 그게 끝이라는 거다. 20대 초반의 톰 크루즈의 외모는 빼어나지만 그 당시에는 연기 경력 4년 차의 신인 배우라 연기력은 떨어졌고, 비주얼은 예술적이지만 각본은 그렇지 않고 스토리가 진부하며 캐릭터의 매력이 떨어져 영화 자체의 재미는 매우 떨어진다. 거기다 러닝 타임은 정말 쓸데없이 길어서 2시간 가까이 되니 정말 지루하다.

배경과 풍경 묘사는 예술의 경지지만 그런 화려한 비주얼을 뒤로 하고 캐릭터와 사건의 스케일을 보면 정말 초라하기 짝이 없다. 유니콘 뿔을 잘라다가 세상에 겨울을 불어닥치게 하고 밤의 어둠만을 지배하다가 이제는 낮까지 지배의 영역을 넓히려는 어둠의 제왕은 그런 거창한 계획을 가지고 있는 것 치고 부하가 달랑 다섯 명뿐이다.

잡아온 사람이나 요정을 요리하는 요리 담당 2명을 빼면 고블린 3명이 끝이다. 주인공 일행도 민폐 작렬 릴리 공주를 제외한 모험 파티 인원은 다섯 명. 인간 주인공 잭과 요정 검프, 페어리 우나, 난쟁이인 브라운 톰과 스크류볼이 전부다.

아무리 인간과 요정의 이야기를 다루었다고 해도 인간측 인물은 잭, 릴리를 제외하면 단 2명밖에 안 나오고 요정도 검프 패거리 4인방이 전부다.

캐릭터 수가 워낙 적다 보니까 그만큼 극중에서 벌어지는 사건이 너무 단편 적이고 스케일도 작다. 짧게 요약하면 ‘릴리 공주와 유니콘이 다크 로드에게 납치당해서 잭 일행이 구하러 간다.’ 이게 끝이다. 극중 잭이 자신을 연모하는 페어리 우나에 의해 요정의 보물창고로 들어가 체인셔츠와 롱소드, 방패를 들고 나오지만 액션의 비중이 워낙 낮기 때문에 그런 요정의 장비들은 거의 장식품에 가깝다.

판타지 배경의 마왕과 용사의 장렬한 싸움을 생각하고 본다면 뒤통수 맞은 기분이 들 것이다. (극중에 잭은 이 모든 사건을 종결한 챔피언이라고 불린다. 일본 판타지로 치면 용사 포지션)

이 작품이 지향하는 건 디즈니 풍의 동화지 반지의 제왕 같은 판타지 대하 서사시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실제로 리들리 스콧 감독이 이 작품을 구성하면서 영향을 받은 게 잠자는 숲속의 공주, 백설 공주와 일곱 난장이, 밤비 같은 디즈니의 애니메이션들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에서 유일하게 재밌는 장면은 유니콘 보호 임무를 맡은 난쟁이 톰 브라운이 후라이팬으로 고블린들이 쏘는 화살을 쳐 내는 패기 돋는 활약과 개그 마무리였다.

그리고 어둠의 제왕에게 프로포즈 받은 릴리 공주가 제왕의 부하로 추정되는 검은 드레스 입은 여악마에게 이끌려 강제적으로 춤을 추다가 춤의 마지막 순간 한 바퀴 빙그르 도니 어느새 코스츔이 바뀌어 있는 씬도 인상적이다.

결론은 미묘. 80년대를 대표하는 판타지 영화 사천왕을 꼽으면 네버엔딩 스토리, 윌로우, 라비린스, 레전드지만 사실 여기서 가장 영상미가 뛰어나면서 한편으로 가장 재미없는 영화가 레전드다. 비주얼에 치중하느라 스토리 자체의 재미가 실종된 작품으로 흥해 실패가 충분히 납득이 간다. (개인적인 재미의 순서는 레전드 < 라비린스 < 네버엔딩 스토리 < 윌로우. 결론은 윌로우가 80년대 판타지 영화의 甲)

영상미만 따지면 적극 추천하고 싶은데 영화 자체의 재미를 놓고 보면 비추천하고 싶은 정말 애매한 영화다.

여담이지만 이 작품에서 어둠의 제왕 배역을 맡은 배우는 가족 영화에서 악역으로 자주 나와 친숙한 배우인 팀 커리다. 본 작의 다크니스 디자인은 후대에 나오는 서양 판타지 영화와 게임의 악마 군주 디자인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 같다. 당장 비슷한 이미지의 악마를 찾아봐도 던전 키퍼의 악마와 매직 더 개더링의 주잠지니를 손에 꼽을 수 있다.

덧붙여 위에서 언급했지만 톰 크루즈는 당시 신인 배우라 연기력이 별로였는데 오히려 극중 잭의 일행인 요정 검프 역을 맡은 배우인 데이빗 베넨트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데이빗 베넨트는 1966년생으로 아역 배우 출신인데 1979년작 양철북에서 아이의 몸으로 성장이 멈춰 어른이 된 오스카 역을 맡아 촬영 당시 11살의 나이로 어른과 배드씬을 찍은 것 때문에 논란이 됐었다. 이 작품을 찍을 당시에는 나이가 19살인데 그 나이 또래의 외국인답지 않게 어린 외모를 자랑했고 요정의 변덕스러운 연기를 잘 해냈다.

추가로 이 작품은 미국판은 89분, 유럽판은 95분, 디렉티스 컷은 115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래 풀 버전이 115분 버전인데 개봉에 앞서 시사회 때 혹평을 면치 못하면서 분량을 한참 잘라낸 89분으로 나온 것이라고 한다. 내용이 길고 지루한데다가 영화 음악 분야의 거장인 제리 골드 스미스가 만든 음악이 시사회 관객들의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미국판에서는 음악까지 교체 했다가, 나중에 유럽판이 나왔을 때 다시 복구 됐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의 제작비는 3천만불이지만 전미 박스 오피스 흥행 수익은 불과 1500만불밖에 안 된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필모그래피 역사에 전설의 레전드한 흥행 참패로 기록되었는데, 리들리 스콧 감독은 이 작품 이후로 판타지, SF 장르의 영화는 전혀 손을 데지 않았다. SF 장르로 복귀한 프로메테우스가 나오기까지 무려 27년이란 세월이 걸린 것이다.

이것도 충분히 이해가 가는 게 듀얼리스트, 에일리언, 블레이드 런너로 연이은 호평을 받던 감독이 이 작품으로 인해 하루아침에 명성이 땅에 떨어져 혹평과 흥행 참패를 겪었으니 정말 어지간히 멘탈 내구력이 높지 않은 이상은 감당하기 힘들었을 거다. 그 실패에도 불구하고 메가폰을 놓지 않고 지금 현재까지 영화를 계속 만들고 재기에 성공한 것을 보면 과연 거장이라고 불릴 만하고 실로 존경스럽다.



덧글

  • FlakGear 2012/08/07 16:36 # 답글

    한번 보고싶긴하네요(...)
  • EST 2012/08/07 17:17 # 답글

    잘 읽었습니다. 전 미국판 유럽판 두가지가 수록된 DVD를 우연히 구해서 갖고있는데,
    '영상미만 따지면 적극 추천하고 싶은데 영화 자체의 재미를 놓고 보면 비추천하고 싶은 정말 애매한 영화'
    라는 말씀이 정말 이 영화의 인상을 잘 요약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전 다크니스 역을 맡았던 팀 커리의 완벽한 마왕 형상과, 공주 역을 맡았던 미아 사라의 청순한 미모만으로도
    일단은 좋아하는 영화 쪽으로 분류를 하곤 있지만요.

    제작비 관련해선 조금 오류가 있는 것 같은데, 최근 착실하게(?) 망해버린 <존 카터>가 2억 5천만불 정도 든 걸로 알고 있어서요. 스파이더맨 당시 제작비가 2억불 넘었다 이런게 화제가 되었던 기억도 있고 한데, 당시 30억불의 제작비가 들었다는 게 어쩐지 좀 의아해서 박스오피스 모조의 <레전드> 항목을 찾아보니 제작비가 N/A라고만 나와있고,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3천만불이라는 것 같습니다. 3천만불이 맞다고 해도 단순계산으로만으로도 반토막 난 영화는 맞군요;
  • 잠뿌리 2012/08/07 17:55 # 답글

    FlakGear/ 한번 볼만한 작품이지요.

    EST/ 아. 3천만불이군요.; 30억불로 잘못봤습니다. 수정해야겠습니다. 팀 커리가 구현한 마왕의 형사과 미아 사라의 미모도 좋지요. 다만 지루하고 재미 없는 스토리 너무 발목을 잡는 것 같습니다 ㅠㅠ
  • hansang 2012/08/08 08:02 # 답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개인적인 80년대 판타지 영화갑은 <프린세스 브라이드 >이긴 하지만요 ㅎㅎ
  • 잠뿌리 2012/08/10 13:33 # 답글

    hansang/ 처음 들어보는 제목인데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한 번 봐야겠네요 ㅎㅎ
  • nenga 2012/08/11 12:45 # 답글

    레전드에 톰크루즈가 있다면 라비린스에는 제니퍼 코넬리가 있죠.
    레전드는 볼 때는 화려한데 막상 인상에 남는 장면이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번 보고 싶네요. 기왕이면 언급하신 4영화 모두
  • 시몬 2012/08/12 23:53 # 삭제 답글

    어릴적 TV에서 주말의 명화로 이걸 틀어준적이 있었는데, 환상적인 영상미에 말그대로 뻑 갔습니다.
    유니콘뿔로 어둠의 제왕 배때기쑤셔버리는 영화가 이거맞죠? ㅋㅋㅋ
    (그러고보니 위에 4개중에 라비린스만 못봤군요. 저도 윌로우는 정말 명작이라 봅니다.)
  • 잠뿌리 2012/08/13 14:47 # 답글

    nenga/ 라비린스에 나온 제니퍼 코델리는 미모가 리즈 시절이어서 정말 예뻤지요.

    시몬/ 네. 맞습니다. 유니콘 뿔로 어둠의 제왕을 찌르는 장면이 있지요 ㅎㅎ 윌로우는 정말 재미있는 영화입니다.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통계 위젯 (화이트)

657969
11049
9397954

메모장

잠뿌리의 트위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