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혹 (Fascination.1979) 컬트/엽기/퓨전 호러 영화




1979년에 장 롤랭 감독이 만든 프랑스산 컬트 호러 영화.

내용은 1905년을 배경으로 도둑인 마크가 같은 도둑 동료들의 돈을 떼어먹고 도망치던 중 낡은 성에 들어가 피신했는데, 거기서 단 둘이 살던 에바, 엘리자베스를 만나면서 기묘한 사랑에 빠져 사건에 휘말리는 이야기다.

이 작품의 메인 키워드는 블러드 석킹. 즉, 흡혈인데 그렇다고 뱀파이 영화인 것은 아니다. 장 롤랭 감독은 프랑스산 흡혈귀 영화의 선구자적 역할을 하고 있으나, 적어도 이 작품에는 흡혈귀가 아니라 ‘인간’이 나오기 때문에 정통 흡혈귀 영화는 아니고 거기서 파생된 흡혈물 같다.

프랑스 귀부인들이 빈혈증을 치료하기 위해 도살장에서 소의 피를 마시다가 다른 피를 마시고 싶다는 욕망에 못 이겨 인간 피를 마시고 거기에 맛 들여 살인을 저지르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하지만 사실 흡혈 행위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테마이긴 해도, 스토리 진행의 주체가 되지는 않는다. 스토리 진행의 주체는 에바와 엘리자베스. 두 미녀와 도둑놈 마크를 사이에 두고 삼각관계를 벌이는 것이다.

에로틱 호러물을 표방하고 있지만 상상 이상으로 지루하고 느릿한 전개를 자랑하며, 흡혈귀 대신 미녀 연쇄 살인마가 나오니 뱀파이어물이 아닌 슬래셔물에 가깝다고 볼 수도 있다.

전라의 몸에 검은 망토 하나 걸치고 수확용 낫을 들고 다니며 사람을 해치는데 그 고딕 호러풍의 이미지가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사실 그런 야시시한 복장보다는 멀쩡한 옷 입고 나오는 씬이 더 많다.

맨 가슴은 적지 않게 나오고 새미 누드도 몇 번 나오긴 하지만 극중 벌어지는 붕가붕가 씬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어서 에로틱한 부분에서 강한 인상을 주지 못하고 있다.

각본은 솔직하게 말해서 막장 드라마가 따로 없다. 마크가 자신을 범할지도 몰라, 하지만 그에게 호감이 있어. 이런 비상식적인 대사가 나오는데다가 결국 파극에 이르는 이 셋의 삼각관계는 뭔가 논리와 상식에 매우 어긋나 있다.

에바와 엘리자벳은 레즈비언 연인이었는데 마크가 둘 사이에 끼어들어 에바와 사랑에 빠지자, 엘리자벳은 둘의 관계를 질투해서 자살 기도까지 하지만 어쩌다 보니 마크를 사랑하게 됐으며 나중에 에바가 마크를 죽이려고 하자 엘리자벳이 에바를 쏴죽이고 그 뒤에 마크가 엘리자벳에게 사랑의 도피를 권하지만, 엘리자벳은 그런 마크를 보고 난 당신을 사랑한 게 아니라 당신의 피를 사랑했다며 또 쏴 죽이고 귀부인 무리로 돌아가니 정말 당혹스럽다. (이게 프랑스식 로맨스일까?)

호러물로서 봐도 전혀 무섭지 않고 긴장감은 제로다. 주인공 마크가 귀부인들의 정체를 파악한 순간에도 몸싸움 한 번 일어나지 않고, 에바와 함께 도망치는데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니다.

프랑스 영화의 특징일지도 모르겠지만 무슨 행동을 보여주기 보다는 쉴 세 없이 불어로 재잘재잘 떠들면서 대사 치기 바쁘니 당연히 속도감이 느리고 지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심지어 막판에 나오는 집단 흡혈씬도 알몸에 속이 비치는 캐미솔 입은 귀부인들이 단체로 나타나 느릿느릿하게 폼 잡고 걸어와 피를 마시니 정말 끝까지 시시하고 맥 빠진다.

인간이다 보니 송곳니로 깨물어 피를 빠는 게 아니라 그냥 주둥이 박고 흡입하는데 어떤 이미지이냐면 짜장면 먹고 난 뒤에 입에 검은 게 묻은 그런 느낌이다.

결론은 평작. 조금 야한 비주얼에 전혀 무섭지 않은 호러가 접목된 에로틱 호러 영화. 사실 야한 것도, 무서운 것도 어느 것 하나 충족시키지 못했다.

하지만 극중 사신이란 표현을 쓰는 만큼 전라의 미녀가 검은 망토 뒤집어 쓰고 수확용 낫을 다루는 이미지 컨셉과 에바 최후의 대사 ‘난 당신을 사랑한 게 아니라 당신의 피를 사랑했어요.’ 이것 정도만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덧글

  • 잠본이 2012/07/29 20:36 # 답글

    컨셉은 비범한데 실행이 변변찮았군요(...)
  • 시몬 2012/07/30 01:41 # 삭제 답글

    프랑스영화나 번역된 프랑스소설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종종 느끼는 건데, 사고방식에 우리나라로선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좀 있다고 봅니다. 구체적으로 콕 집어서 어디라고 말은 못하겠는데, 묘한 부분에서 극단적으로 자기 중심적이라고 할까...무슨 망상? 같은걸 시작하면 폭주기관차처럼 끝도없이 밀고나가는 경향이 있는거 같아요.
  • 잠뿌리 2012/07/30 14:06 # 답글

    잠본이/ 빈혈증이라 피 마시는 귀부인이란 컨셉도 사실 좀 시시했지만 알몸 사신 이미지는 괜찮았습니다 ㅎㅎ

    시몬/ 확실히 그 자기중심적인 사고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의 등장 인물도 죄다 자기 중심적인 인물이지요. 주인공 마크부터 시작해 에바, 엘리자벳 등 전부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다 파멸을 맞이합니다.
  • 먹통XKim 2012/07/30 14:41 # 답글

    장 롤린의 고성의 여인(1977)도 그러고 레즈비언 흡혈귀 구성이 돋보이네요...흡혈귀는 사람을 안 죽이려드는데 그녀를 사랑하는 여성이 더 악랄하게 사람을 죽여 피를 바친다는 구성이 꽤 괜찮았는데 이 영화는...음.
  • 잠뿌리 2012/08/03 13:49 # 답글

    먹통XKim/ 장 롤린 감독의 흡혈귀는 유난히 레즈비언 코드가 많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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