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형래와 괴도 루팡 (1990) 영구 무비




1990년에 경석호, 이상율 감독이 만든 작품. 흑기사 형래와 광대들의 후속작이다. 심형래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이다.

본래 전작인 흑기사 형래와 광대들의 라스트 씬에서 극중 형래의 대사로 후속작 제목을 ‘철가방 형래와 괴도 루팡’이라고 공개했는데 실제로 정식 제목이 된 것은 ‘심형래와 괴도 루팡’이다.

내용은 서울에서 현상금 1억이 걸린 괴도 루팡이 나타나 나쁜 부자들의 집을 털어서 가난한 사람을 돕는 의적 활동을 하고 있는 와중에, 중국집 주인 맹하림의 아들 맹천재가 소년 탐정단을 결성해 루팡을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가운데.. 중국집의 건물주인 금강산 부동산의 주인 일당이 재일 교포 2세인 금강산과 짜고 가짜 루팡 행새를 하여 도둑질을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이전작인 포졸 형래와 벌레 삼총사, 흑기사 형래와 광대들과 다르게 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이전 시리즈에 쭉 같은 편으로 나왔던 박승대, 서원섭, 김의환 중에 한 명은 완전 엑스트라로 전락하고 다른 두 명은 악역으로 나온다.

극중 형래가 보통 때는 바보지만 변신, 혹은 변장을 하면 무예가 출중한 영웅이 되어 악당과 맞서 싸운다는 설정은, 시리즈 전통처럼 고정되어 있고 이 작품 역시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데 이전작은 그래도 형래가 스토리의 중심에 있고 극중 가장 큰 활약을 하면서 주인공으로서의 존재감을 나타내는데 비해 이번 작품은 유난히 그 비중과 활약이 적다.

이 작품에서 사실 주인공 포지션에 가까운 건 중국집 사장 맹하림의 아들인 맹천재다. 스토리 진행이 맹천재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형래의 실체인 괴도 루팡은 오히려 출현 비중이 적다.

형래의 일상 모습인 중국집 배달원으로 나올 때는 그냥 개그만 치고, 괴도 루팡으로 나올 때는 ‘괴도’라는 신분에 어울리지 않게 히어로처럼 나온다. 극중 사람들이 위기에 처할 때 뿅하고 나타나 악당들을 소탕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괴도 루팡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적인 존재로 나와서 그냥 주인공 천재가 스토리 진행을 하다가 막히거나 위험에 처하면 어디선가 불쑥 나타나 문제를 해결해 준다.

스토리 진행에 일관성이 전혀 없어서 몰입하기 어려운 구석이 있다.

맹천재의 초기 목적은 괴도 루팡을 잡아 현상금을 타내는 일인데, 여기서 중간에 친구인 영하의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해 거액의 수술비가 필요한 상황이라서 친구들과 함께 이 일 저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그러다 우연히 금강산 일당의 악행을 목격하고 그들을 잡기 위해 분투하는 등등.. 목적과 행동이 스토리 진행에 따라 계속 바뀌기 때문에 정말 산만하다.

설정의 허술함이 너무 커서 당최 이해가 안 되는 장면이 속출한다.

예를 들어 극중 금강산이 자기 부하들이 무능한데 그냥 내치자니 비밀을 너무 많이 알고 있어 일본에서 불러온 악당들을 시켜 그들을 살해하는데, 천재 일행이 그걸 목격하고 주위에 알리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아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가.. 그로부터 약 2분 뒤. 분명 칼에 찔려 죽었던 부하들이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채 멀쩡히 깨어나 ‘이제 뭐 먹고 살지?’ ‘강도짓이나 하자!’ 이러면서 벌건 대낮에 가정집을 습격했다가 갑자기 툭 튀어나온 괴도 루팡에게 제압당해 경찰서 앞에 던져지는 앞뒤가 안 맞는 내용이 나온다.

상황이 이런데 천재는 계속 주위 사람들한테 악당들이 살인을 저질렀어요! 이러고 있으니 어느 장단에 맞춰줘야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사실 산만한 스토리보다 더 몰입을 방해하는 것은 무리수다. 아무리 아동 영화라고 하지만 너무 황당한 전개가 속출한다. 주인공 천재는 초등학생인데 면허증도 없으면서 자동차를 운전하고 스쿠터까지 몰고 다닌다. 소년 탐정단 멤버인 우석이는 물을 석유로 변환시키는 연구를 하는 발명 소년인데 금강산 일당이 그 연구에 눈독을 들여 우석이를 납치해 일본으로 데리고 가려고 하며, 클라이막스 부분에서는 이 어린 소년 둘이 일본 악당 한 명을 초전박살낸다.

아무리 주인공 및 아동 영화의 어린이 보정을 받았다고 해도, 불과 몇 분 전에 금강산 일당에게 발리던 꼬마들이 몇 분 후에 금강산 일당이 형님으로 모시는 일본 악당을 해치우는 걸 보면 너무 이질감이 크다.

거기다 그 싸움이 괴도 루팡의 라스트 배틀보다 더 분량이 많고 비중도 큰데, ‘호소자’처럼 뭔가 그를 듯한 격투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정말 보는 내내 손발이 오그라드는 유치한 기술이 난무하기 때문에 이쯤 되면 완전 정신 데미지를 입는 수준이다.

애초에 주인공인 천재는 전혀 정감이 가는 캐릭터가 아니다.

아이인데 자동차, 스쿠터도 운전하고 극중 다른 친구의 대사처럼 어른의 일에 너무 개입하는 게 아이답지 않아서 정 떨어지기는 하지만.. 그보다 더 문제인 건 상식이 없다는 점이다.

극중 금강산 부동산 사장의 명령에 따라 부하들이 중국집에 내려가 깽판을 치는데 괴도 루팡이 나타나 그들을 제압하고 돈까지 주고 나가려는 찰나, ‘너 잡으면 현상금이 1억인데 이 정도 돈 받고 봐줄 것 같냐?’ 이렇게 적반하장으로 나왔다가 볼기짝을 맞으니 악당들이 당하는 것보다 그 장면이 가장 통쾌했다.

하편 중반부에 가면 천재가 스스로 말하길 괴도 루팡을 존경은 하는데 그는 얼굴을 감추고 활동하니 비겁하고 도둑에 지나지 않는다 라고 가멸차게 까면서 그것도 모자라 아버지와 형래형은 겁 많고 욕심이 많아 그런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 라고 깨알 같이 씹으니 애는 애인데 애답지 않은 건 둘째치고 생각이나 행동이 주인공 같지 않은 게 가장 큰 문제 같다.

사실 이건 스토리를 정리하지 못한 문제가 가장 크다. 천재의 목표가 자꾸 바뀌고 초기 목적인 괴도 루팡 잡기는 어느새 잊혀지고 금강산 일당의 범죄에 휘말리니 천재 VS 괴도 루팡에서, 천재 VS 금강산 일당으로 바뀐 시점에서 수습할 수 없던 것이다.

그나마 인상적인 게 있다면 말은 괴도 루팡인데 얼굴 가면은 각시탈 가면이라는 것. 그리고 태권도와 순간이동을 특기로 싸우며 망토를 가지고 마타도어 기술도 쓰는 장면이다. 그리고 일종의 메타 픽션 같은 장면 두 개가 기억에 남는다.

히로인 맹순이한테 냉대를 받은 형래가 ‘나도 니가 좋아서 이러는 줄 아냐. 영화니까 이러는 거지.’ 이런 대사를 날린 씬과 엔딩 직전에 천재가 ‘후속작에서 형래형의 정체가 밝혀질까요?’이런 대사 쳤다가 꿀밤 맞고 촬영 종료 후의 장면을 쭉 이어서 보여주는 씬이다.

결론은 비추천. 심형래가 나오고 또 타이틀에 심형래의 이름이 들어가 있지만, 심형래 영화답지 않은 작품이다. 주인공답지 않은 주인공한테 비중을 몰아주면 스토리가 얼마나 망가지는지 새삼스럽게 알게 해준다.

주인공 비중과 보정을 천재 말고 형래/괴도 루팡에 몰아주었다면 그나마 영구 시리즈에 어울리는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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