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 소설 판매 부수 계약에 대한 경험담 - 3권 고료 16만원 내 출판물


최근 신작을 완결했다.

장르 소설이고 출간 횟수로는 여섯질 째.

난생 처음으로 판매 부수 계약을 했다.

본래 기존의 계약은 1,2권 보장, 뒷권부터 발행 부수로 정산하여 고료를 지급하는 건데 판매 부수는 그 중 최하위 계약 조건이다.

1,2권 보장이란 건 책을 처음 찍어낼 때 일정 부수의 금액을 보장하여 지급하는 것.

발행 부수는 책을 찍는 권수 만큼의 고료을 지급하는 것.

판매 부수는 책을 찍어낸 다음 그걸 판매한 금액을 고료로 지급하는 것이다.

내가 2002년에 해우 출판사랑 데뷔를 하던 시절, 판매 부수 계약을 하던 출판사가 몇군데 있었는데 그런 곳은 작가들 사이에 절대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할 곳으로 손꼽혔고 결국 업계에서 퇴출당했다.

그런데 지금 그로부터 8년이 지난 다음에는 장르 시장의 암흑기가 도래해 시장 상황이 너무 안 좋다보니 판매 부수가 횡행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보통 판매 부수 계약이 아니라, 1,2권 보장 없이 전부 판매 부수 계약이었다.

본래 모 출판사와 계약한 원고가 하나 남아있지만 방치 플레이 당하다가 떨어졌는데 반년 동안 수입이 없어 저금도 다 떨어져 가는 상황이라 급전이 필요했다.

그래서 마침 계약 졔의가 왔기에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란 생각에 판매 부수 10% 계약이 독소 조항이란 게 알면서도 계약을 하게 됐다.

책을 내고 완결권 원고까지 넘긴 뒤 받은 고료를 보니 내가 너무 안이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장르 소설의 판매 부수 계약은 내가 상상한 것 이상이다.

퍼센테이지가 높아도 판매 부수 계약은 독 중의 독이었다.

처음 계약 당시에는 책이 나오면 백만원이 조금 넘게 들어올 거란 말을 들었다.

나는 그때 그게 권당 백만원인 줄 알았다.

기존의 판타지 소설을 낼 때 가장 적게 받은 게 그래도 한권당 150만원이었기 때문이다.

근데 막상 1,2권을 내고 보니 지급 받은 돈은 124만원 가량이었다.

그것도 책이 나오면 당일 지급 받는 게 아니라 책이 나온 한달 뒤 판매 금액 정산 뒤 지급되는 것으로 권당 약 60여만원 정도를 받은 거였다.

이 금액은 내가 기존에 책을 출간하고 받던 보장 부수 고료의 평균에 비교하면 약 1/3 밖에 안 되는 액수라서 사실 좀 충격을 받았었다.

그런데 이게 왠 걸. 그 정도로 놀라면 섭섭했던 것이다.

그보다 더한 충격과 공포가 기다리고 있었다.

3권은 지난 달에 나왔는데, 계약할 당시엔 분명 책이 나오면 다음달 10일 이후에 고료를 지급한다고 말했지만.. 10일이 지나고 20일이 되서야 왜 고료가 지급되지 않냐고 문의해보니. 4권 원고가 들어와야 고료가 지급된다고 했다.

23일날 원고를 넣으니 25일이 되서야 원고를 확인했더니 분량이 모자라 고료를 못 주겠다고 해서 그날 바로 추가 분량을 써서 보냈더니 퇴근 시간이 지나서 월요일인 오늘 28일 오전에 입금해준다고 했다가 오전에 입금이 안 되서 하루 종일 3번에 걸쳐 출판사에 전화를 해보니(담당자 명함에 적힌 폰 번호는 없는 번호라고 떠서) 담당자 부재 중이라고 돌아오면 지급하겠다고, 기다리겠단 말을 계속 듣다 지금에야 고료를 지급 받았다.

그래서 지급 받은 3권 고료는 16만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16만원이다.

책 한권 써서 16만원 받은 거다.

단편도 아니고 글자수 13만자 짜리 800매 소설책 한 권 써서 16만원을 받은 거다.

내가 기존작 5권 막권 쓸 때 받은 인세가 2009년에는 60만원 가량, 2010년에는 32만원 가량이었다.

액수가 적긴 하지만 그래도 이쪽은 1,2권은 다 보장되서 다행히 경제적 여건이 악화되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이번엔 보장 부수 하나 없어서 1,2권 합쳐 120받고 3권 연결권으로 16만원을 받은 것이다.

1,2,3권 고료 다 합쳐도 150만원조차 안 된다.

S모 출판사와 계약해서 출판하고 받은 1권 고료 150만원에도 미치지 못하고, R모 출판사와 계약해서 계약금 받고 1권 남은 고료인 150에도 미치지 못한다.

지난 수년 동안 내가 책을 내고 번 권당 고료에도 못 미치는 액수를 1,2,3권 내고 받은 거다.

4권이 완결인데 4권 고료는 분명 더 줄어들거란 걸 생각해 보면 10만원 미만. 겨우 몇 만원 밖에 못 받을 것이다.

과거 신인 작가 후려치기로 유명한 H모 출판사에서 작가들 데려다 계약시키고 책 내서 인세로 5만원 준다는 게 우스개 소리인 줄 알았는데 직접 겪어보니 우스개 소리가 아니었다.

아무리 판매 부수라고 해도 이런 고료를 지급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한 내가 안이한 것이고 어리석은 거였다.

3권 고료 16만원.

나이 30되서 가족을 부양해서 간신히 입에 풀칠하고 먹고 사는 입장에서 이 액수는 충격과 공포였다.

3권 고료 16만원.

이게 지금 장르 소설계의 현실인 거다.

더 이상 밑으로 떨어질 곳 없는 최저한의 밑바닥이다.

1,2권 보장 부수해주면 작가들이 돈 먹고 튀어서 책 안낸다 뭐다 경기 안 좋다 뭐다 해서 판매 부수 계약을 합리화시켰는데..

현실은 이랬다.

그런데 이 쥐젖만한 고료도 제때 안 주고 늦장부리고 시간끌다가 주는 거 보면 배신감과 상실감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아무래도 너무 안이하게 생각했고, 아직 고생을 덜한 것 같다.

3권 고료 16만원.

고료 지급받는 날은 작가한테 경사스러워야 하는데 어쩐지 오늘은 내 생애 최악의 날로 기억될 것 같다.

몇날 몇일 밤을 새가며 한달 동안 쓴 책 한권의 고료 16만원.

나는 그 한달 동안 왜 밤을 새가며, 그렇게 열심히 글을 쓴 걸까?

너무나 바보 같고 어리석다.

장르 소설을 쓰고, 책을 낸다는 것에 대한 회의감마저 느껴진다.

3권 고료 16만원.

그 말이 계속 귓가에 멤돌고 머릿속에 가득하다.

얼마 전 영화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 씨가 아사한 사건과 만화진흥법 공청회에 갔다가 모 잡지의 간판 스토리 작가도 스토리 써서 받은 고료가 고작 1개 당 55만원 박에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게 떠오른다.

그게 남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이건 그보다 더한 걸지도 모른다.

3권 고료 16만원.

저주스럽다. 이건 또 무슨 저주냐.

아는 친구 중 하나가 잘 다니던 회사를 접고 1년 동안 글을 한 번 써보겠다고 했는데 도시락싸들고 가서 말리고 싶다.

그 친구 뿐만이 아니라 장르 소설 작가가 되고 싶은 꿈을 가진 사람들한테도 충고하고 싶다.

이 바닥은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낭만적인 곳은 아니다.

이 바닥의 현실은 이렇다.

3권 고료 16만원.

꿈과 열정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란 게 있고, 그 일이 지금의 장르 시장이다.

내가 비록 영세 출판사와 최악의 조건으로 계약해 이런 고료를 지급받았다고는 하나, 장르 시장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고 작가가 받는 고료는 계속 줄어드니 다른 곳도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비유를 하자면 바다로 떠난 배가 밑창에 구멍이 나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고 나 같이 이런 악조건으로 계약한 작가들은 배 밑에 있다가 물이 차올라 숨이 막혀 끝장나고, 물이 서서히 위로 올라가 갑판 위까지 차오르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다들 현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니 다른 일을 할 수 있으면 다른 일을 하고, 직장이 있으면 절대 그만둘 생각을 말기 바란다.

이 바닥은 그야말로 지옥이다.

백날 머리 싸매고, 밤잠을 설쳐가며 글을 써서 책을 내도 아무런 성과도, 보상도 받지 못할 것이다.

나는 몸이 안 좋아서 글쓰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고, 때문에 독배란 걸 알면서도 마시고, 지옥이란 걸 알면서도 발을 디딜 뿐이다.

그렇게 스스로의 몸을 버리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고 글 안 써도 먹고 사는 게 가능하면 이쪽을 절대 돌아보지 말아라.

진심에서 우러나온 충고다.

이 바닥은 만만하지 않아! 이런 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현실을 직시하라고 하는 거다.

'나는 아니겠지. 나는 저런 일을 당하지 않아. 설마 그정도까지 심하겠어? 그렇게 어려운 시장은 아닐거야.'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게 내가 하던 말이고, 그런 말을 하면서 스스로를 독려하며 억척스럽게 글을 쓰고 책을 내왔다.

그러나 지금 서서히 한계에 봉착한 것 같다.

지난 수년 동안 내 주위에는 글을 쓰는 사람이 많았지만 지금은 모두 생업을 찾아 떠났고 글을 쓰고 책을 내는 사람은 이제 거의 나 혼자 밖에 안 남았다.

안 그래도 망망대해에 홀로 표류하고 있는 심정인데 태풍까지 몰아치니, 이래가지고는 사람이 살래야 살 수 없다.

10년 동안 글을 쓰면서 책을 내오면서 처음으로 펜을 꺾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 어떤 좌절과 절망에도 굽히지 않았었지만..

3권 고료 16만원.

그 파괴력있는 고료 앞에 쓰러질 것만 같다.

현실은 영화보다 더 호러블하구나.

유난히 술이 고프고 미친 듯이 취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3권 고료 16만원으론 한잔 술을 기울일 여유도 안 되는구나.

P.S1: 3년 전인 2008년. 보장 부수에 대한 작가의 시각이란 포스팅을 한 적이 있다. 보장 부수가 없아 판매 부수로만 돈을 주면 이런 현실이 되는 거다. 그때 나온 여러 말과 이론들을 오늘 내가 경험하게 된 것 같다.

P.S2: 내가 몇몇 출판사에 외부 교정 아르바이트를 할 때 한 건당 받았던 돈보다도, 3권 고료 16만원은 더 적은 액수다. 가장 빠르면 하루, 보통은 이틀에서 삼일 남짓 걸리는 교정일보다 한달 뼈빠지게 글써서 받는 책 한권 고료가 더 적은 게 이 바닥을 지옥이라 부르짖는 이유다.

P.S3: 여기서 말하는 장르 시절은 판타지/무협 시장이다. 일반 소설과 학습 만화는 포함되지 않는다.



덧글

  • dk 2011/11/02 21:39 # 삭제 답글

    작가에 대해서 막연하게 꿈을 가지고 있었는데 글을 읽고 어떤 것인지 조금은 알게 되었습니다.
    여태까지 어느 사이트에 올려놓으면 출판사가 와서 계약을 하고 그 뒤에 소정의 원고료를 지급받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너무 쉽게 생각했나봐요. 일본 라이트노벨인지 뭐시기처럼 그냥 일기쓰듯 주절주절 적어놓고 그것으로 돈받고 또 그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쉽게 팔리고 쉽게 읽히는 것처럼 쉽게 생각했었는데 그것도 아닌가봐요.

    제가 얼마나 쉽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일깨워주네요. 마치 제 일 처럼 눈 앞에 선하니 오늘 이 글을 읽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만약 안 읽었다면 소설 쓴답시고 컴퓨터 켜놓고 멍하니 있었겠죠, 다른 것이라도 찾아봐야 되겠어요.
  • 고지식한 맘모스 2018/01/19 07:28 # 답글

    너무 처참한 현실입니다. 개선도 어려울 거 같고 당시 아사한 최고은 작가의 뉴스를 접하고 가슴이 아팠는데 그 분 혼자만의 고통이 아니었군요.
  • 잠뿌리 2018/01/19 16:30 #

    어려운 현실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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