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여우 여우비 한국 애니메이션




2001년에 ‘마리 이야기’와 여러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이름을 알린 이성강 감독이 2007년에 만든 극장용 애니메이션. 탤런트 공형진, 류덕환, 손예진 등이 성우로 기용됐다.

내용은 먼 옛날 꼬리 아홉 개 달린 여우인 구미호는 변신술에 능했는데 사람의 영혼을 훔쳐서 완전한 사람으로 변신했기 때문에 인간들의 손에 의해 몰살당하고, 유일하게 아기 여우 여우비 혼자 살아남게 되는데 지구에 불시착한 외계인 요요 일행과 조우하면서 그들과 함께 100년 동안 한 지붕 아래 살다가 마침 산속 집 근처의 수련원에 캠핑을 온 아이들과 만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일단 이 작품은 현직 탤런트를 성우로 기용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비평을 받았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론 그게 돌아온 홍길동처럼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서 보는데 지장은 없었다.

돌아온 홍길동 같은 경우 애니메이션 성우와 전혀 안 어울리는 사람들을 데려다 놓고 당대 유명한 스타들이라며 노골적인 마케팅을 했기 때문에 최악의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사실 이 작품에 참가한 탤런트는 단지 스타성만 내세운 사람들은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비호감은 아니었다.

각자 나름대로 맡은 배역의 성우 연기를 충실히 수행했다. 캐스팅 역시 비교적 잘된 편이다.

애초에 이 작품을 볼 때 공형진이 누군지는 알았지만 손예진과 류덕환은 이름만 듣고는 누군지 모르고 봤기 때문에, 스타 성우 기용이란 편견을 갖고 보지 않아서 그렇게 느낀 걸지도 모른다.

이성강 감독은 전문 성우의 과장된 연기보다는 비성우의 보통 연기를 선호한다는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실제로 8년 전인 2001년에 나온 마리 이야기에서는 배역 대부분이 연예인이었다.

이병헌, 안성기, 배종옥, 나문희, 장항선 등의 탤런트가 목소리를 맡았고, 여우비에서도 성우로 기용된 류덕환, 공형진도 이때 출현하여 이성강 감독과 인연을 맺었다.

즉 천년 여우비에서 새로 추가된 탤런트 성우는 손예진 하나뿐이고 나머지는 본래 작품을 같이 하던 사람들이니 특정한 스타 성우로 마케팅을 한 것이 아니라 감독의 스타일이 그런 것뿐이다.

일어로 재더빙되지 않으면 보지 않겠다는 사람도 종종 보이는데, 연예인 더빙의 편견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 작품의 메인 스토리는 여우비의 이야기다.

100년 동안 살아오면서 처음 접해 본 인간에게 관심을 갖고, 인간들 틈에 껴서 살면서 인간을 좋아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사건 사고가 메인 스토리다.

그러나 여우비의 정체는 꼬리 아홉 달린 구미호고, 구미호하면 한국의 대표적 요괴 중 하나로 관객들이 그 말만 들어도 뭔가 기대하는 게 있는데 그걸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어색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객관적으로 볼 때 여우비의 설정은 그리 어색하지는 않았다. 변신술에 능한 여우 요괴인데 사람의 간을 빼먹는 건 아니고 영혼을 훔쳐 완전한 인간으로 변신할 수 있다. 이 정도 설정만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구미호를 애니메이션으로 재구성하는 걸 기대한 사람을 만족시키지 못한 것 같다.

이것은 한국 설화를 베이스로 한 작품의 딜레마라고 할 수 있다.

일종의 고정관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게 오히려 해당 설정의 재구성을 방해하는 요소가 된다. 도깨비는 이래야 한다. 구미호는 이래야 한다. 이런 기준이 발목을 잡는 것이다.

그리고 스토리 비중이 여우비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다른 캐릭터의 비중은 축소된 편이다. 그래서 캐릭터들의 개성을 잘 살리지 못했다라는 말이 나오고, 스토리가 산만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사실 여우비를 스토리의 중심에 넣고 보면 다 연결되는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요요 일행은 각자 고유한 설정과 대사를 가지고 있고, 수련원 일행 중 금동이는 개그맨 지망생이라 이집트 송이란 걸 만들어 부르고 강 선생은 우비가 자기 엄마라고 속이며 어른 모습으로 변신한 버전에 반해서 들이대는 등등 분명 극중에서 나름대로 개성이 드러날 만한 장면과 요소가 많이 나왔으나 그게 비중이 적으니 개성이 없는 걸로 오인 받은 것 같다.

예를 들면 극중 여우비를 잡으러 온 퇴마사가 후반부에 허무하게 퇴장을 하는 거나, 이 작품 최강의 악당인 그림자 탐정이 별 힘도 못 써보고 쓰러지는 것. 그리고 극 초반에 고향별로 돌아가기 위해 분투하던 외계인 요요 일행이 나중에 가면 배경 엑스트라로 전락하는 것 등등 캐릭터 비중의 밸런스에 잡는데 실패했으니 까여도 어쩔 수 없다.

또 매력적인 조연과 감초 역을 맡은 캐릭터가 없다는 게 약점이라고 생각한다. 주인공인 여우비 1인 체재로는 재미의 정도가 줄어드는 게 당연하다.

몇몇 장면은 관객들에게 상당히 유치하게 다가갈 수 있는데 사실 그게 마음을 넓게 가지고 보면 그냥 수용할 수 있지만, 처음부터 안 좋은 시선으로 보면 깔 수밖에 없는 게 있긴 하다.

예를 들면 여우비와 외계인 칸타나 일행이 뜬금 없이 우우우우~ 송을 부르며 리마리오의 더듬이 댄스를 추는 것 같은 거다. 이건 사실 나도 보는 내내 왜 넣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주인공 금동이의 이집트 송인데 이겐 개그송으로 넣은 게 아니라, 금동이와 여우비가 가까워지는 매개체로 나온 노래이기 때문에 바로 납득하고 넘어갔지만 보통 관객들은 그렇게 인식하지 않고 저걸 지금 개그맨 지망생이란 놈이 개그송이라고 부른거냐! 라고 까게 되는 것이다.

시골 산속을 무대를 배경으로 한 비쥬얼은 꽤 아름다운 편인데 이걸 아주 단순하게 2D와 3D로 나누어서 퀄리티 저하를 따지는 사람들이 많다.

개인적으론 비쥬얼이 몇 차원이든 그건 상관없다고 본다.

이 작품의 비쥬얼에 감탄한 건 배경을 디테일하게 표현하면서 현실과 환상 세계의 경계를 넘나드는 점이었다.

시골의 골목길, 야밤의 철로, 수련원, 산과 숲속, 호숫가 등등 현실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을 자세히 묘사했기 때문에 거기서 벌어지는 일들에 몰입할 수 있었다.

특히 멋진 장면은 여우비가 그림자 탐정을 쫓아가는 장면을 무슨 FPS인 것 마냥 1인칭 시점으로 속도감있게 표현한 씬이었다.

그리고 호수 밑에 존재하는 죽은 영혼들의 세계인 카니바 같은 곳도 잘 표현해서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시각적 재미를 준다.

지브리 스튜디오의 영향을 받은 게 없지 않아 있다.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토토로, 귀를 기울이면 등이 떠오를 만한 장면이 몇 개 있다.

물론 그렇다고 완전 아류인 건 아니고 나름대로 독자적인 노선을 구축하고 있어서 마리 이야기 때 익히 나온 바 있는 파스텔 풍의 색체와 현실과 환상의 교차로 감독 고유의 색깔을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을 본 시점에서 지브리 스튜디오를 떠올린 관객들은 그리 달갑지 않은 시선을 보낼 것 같다.

지브리 스튜디오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곧 관객들로 하여금 작품을 보는 눈을 더욱 높고 매섭게 만들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작품에서 이성강 감독의 스타일과 색깔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의 전작인 마리 이야기를 봐야 하는데.. 보통 대부분의 관객은 두 작품을 다 보지 않았으니, 단순히 지브리 스튜디오의 느낌이 난다며 평가절하 할 수밖에 없다.

어떤 작품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사실을 알지 못하면 객관적인 평가를 방해하기 때문에 무서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각 장단점이 따로 존재하지만 현실에서 결과적으로 국내 관객들로부터는 그리 좋은 평을 받지 못했다.

애초에 일본 애니메이션에 길들여져 눈높이가 높아진 관객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사실 한국 애니메이션은 일본이나 미국 애니메이션보다 상대적으로 엄격한 잣대로 평가 된다.

한국 애니메이션이라고 무조건 호응하면 안 된다는 기치 하에 성우 연기가 어색하네 캐릭터 개성이 없네 하면서 난도질당하는 건 이제 통과의례가 됐다.

한국 애니메이션이니까 유치해, 유아틱해. 스토리가 뻔해, 비쥬얼만 고집했어. 이런 식의 편견이 생기기 때문에 오히려 더 빡세다.

결론은 추천작. 편견과 한국 애니메이션에만 적용하는 엄격한 잣대를 버리고 본다면 나름대로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근래에 나온 한국 극장용 애니메이션 중에 손에 꼽을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까기 보다는 오히려 보듬어주고 싶은 그런 스타일이다.



덧글

  • 헬몬트 2009/11/24 11:10 # 답글

    몇몇 성우 연기는 솔직히 별로였습니다...

    그래도 그렇게 애니적으로 보자면 돌아온 사무라이 길똥이보단 1조배는 낫었죠
    (이성강 감독 전작 마리 이야긴 ...재미는 좀 지루해도 영상미는 정말 환상적이었죠.(음악이나 장면 요소
    배경은 정말이지 감탄했던 애니였죠..그러니 앙시 애니국제 영화제 장편 부문 그랑프리를 받은 것도 기여했으리라는 생각)

    아쉬움도 들긴 하지만 열악한 국내 애니 제작 환경을 생각하면야.

    아참..이 여우비 ...가 커서 여고생이 되어 겪는 장편 시리즈로 지금 만들어지고 있답니다
    한국 애니 티브이 장편 사상 처음으로 54부작 장편으로 만들어질 예정이라네요.

    (거기선 성우를 아무래도 바꾸겠죠?)
  • 놀이왕 2009/11/24 20:24 # 답글

    마리 이야기는 봤는데 아직 이건 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TV판이 제작중이라는데 언제 볼수있을지 모르겠네요..
  • 놀이왕 2009/11/26 18:09 # 답글

    그리고 벼랑 위의 포뇨가 개봉했을 당시에 마리이야기에서 공중에 떠있는 마리가 바닥에 누운 남우를 바라보는 장면과 비숫한 장면이 있어서 국내 네티즌들이 포뇨가 한국 애니 표절했다는 얘기가 나돈적도 있습니다.
  • 비틀매니아 2009/11/30 12:32 # 삭제 답글

    솔직히 연예인들(성우라고 불러주기엔 너무...) 연기 별로였습니다.

    이성강 감독도 좀 생각을 고쳐먹었으면 좋겠네요. 성우가 왜 성우인지를 좀 깨달았으면...
    앞으로도 성우 기용 이런 식으로 한다면 전 아예 이성강 감독 작품은 안 볼 생각입니다.
    애니메이션에서 성우의 비중이 얼마나 큰데...
  • 잠뿌리 2009/12/01 13:56 # 답글

    헬몬트/ 돌아온 영웅 홍길동은 역대 한국 애니 중 최악의 성우진을 자랑하지요.

    놀이왕/ TV판이 제작 중이라니 기대됩니다.

    비틀매니아/ 생각보다 어색하진 않았지만 잘했다고 호평하기도 애매하기는 했지요. 연예인 성우 기용을 고집하는 건 이성강 감독의 고유 스타일인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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