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호 (1969) 희귀/고전 호러 영화




1969년에 신상옥 감독이 만든 한국산 사극 공포 영화

내용은 진성여왕이 화랑 출신으로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운 장군 김원랑에게 반해 그의 아내 여화를 도성 밖으로 쫓아내라 명했다가, 산적을 만난 여화가 아이와 함께 억울한 죽음을 당한 뒤 천년 묵은 여우의 혼이 깃들어 있다는 호숫가에서 천년 여우의 혼을 빙의되어 복수를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이 작품은 사실 공포 영화라기 보다는 거의 멜로 영화에 가깝다. 음탕하기로 소문이 났지만 단 한 사람의 남자. 원랑을 마음에 품고 있던 진성여왕이 팜프파탈 이면에 품고 있는 애증이라던가, 아내가 요물에 씌였다는 걸 알면서도 베지 못해 갈등하는 원랑과 그런 남편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 흐느끼며 번민하는 여화 등 세 명의 인물 사이에 벌어지는 이야기는 상당히 짠하다.

이 작품에서 메인이 되는 여우 귀신은 지옥 마왕의 명을 받고 지상에 나타나 천년의 세월 동안 1000명의 사람을 잡아먹은 뒤 육천 세계를 지옥으로 만든 다음 하늘로 올라가는 무서운 요괴인데 999명을 잡아먹고 마지막 남은 1명을 잡아먹으려던 찰나, 신라 무열왕의 신궁을 맞아 퇴치 당한 뒤 몸이 조각나 가루가 되어 천년 호수에 뿌려졌다는 설정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런 것 치고는 여우 혼이 빙의 된 여화는 처녀 귀신처럼 나오고 기껏해야 비행과 재주넘기 정도의 능력 밖에 없기 때문에 요괴로서의 표현은 좀 시시한 편이다. 이 작품이 나온 뒤 1년 후에 나온 신상옥 감독의 이조괴담에서 열연을 펼친 고양이 귀신을 생각해 보면 천년호의 여우 귀신은 공포물의 캐릭터로선 무서움도, 재미가 없다.

그래서 사실 긴장감은 별로 없고 진행도 상당히 느린 편에 속한다.

백운 대사의 조언에 따라 진성여왕이 침소에 가져다 놓은 무열왕의 국보 신궁이 저절로 화살 시위를 튕겨 여우 귀신의 출현을 알리는 것 이외에는 그리 인상적인 장면이 없다.

무열왕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올라 진성여왕을 죽이고 신라를 멸망시키려는 여우의 원한도, 사실 그게 전면에 부각되기 전에 진성여왕, 여화, 원랑의 삼각관계를 중심으로 스토리가 진행되기 때문에 여우 귀신은 그냥 곁다리인 것 같다.

야심한 밤에서 새벽 닭이 울기 전까지의 여우 혼에 씌여 돌아다니는 여화는 솔직히 하나도 무섭지 않았고 특히 이히히히~하는 귀신 웃음 소리가 너무 낯간지러웠다.

후속작인 이조괴담을 먼저 본 다음에 그 전 작품인 천년호를 봐서 그런지 몰라도, 이조괴담 때 장녹수와 박상궁의 그 요사스러운 웃음과 너무 비교가 되는 것 같다.

클라이막스 씬에서 팔 잘린 여화가 제정신으로 돌아와 남편을 찾아해매는 씬과 에필로그 부분에서 왕위를 선양해 한 사람의 보통 여인이 된 진성여왕의 고백을 뿌리치고 여화의 무덤을 지키는 원랑의 모습이 이 작품의 백미인 것 같다.

아침 안개가 은은하게 낀 숲속에서 낙엽이 떨어지고 있는 가운데 백운 대사가 아내의 무덤을 지키다 해골이 된 원랑을 발견하는 씬은 정말 짠한 연출이었다.

결론은 추천작. 공포물보다는 멜로물로 보면 상당히 괜찮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여담이지만 신상옥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제 3회 삿체스 환상 공포 영화제 황금 감독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2003년에 이광훈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한중 합작으로 리메이크 한 바 있지만 그쪽은 흥행과 비평 둘 다 참패를 면치 못했다.

추가로 이 작품의 69년도 포스터를 보면 놀란 여화의 얼굴이 왠지 모르게 김혜수를 닮았다.

이 작품은 한국 영상 문화 위원회의 7월 기획전으로, 한달 내내 인터넷에서 VOD로 무료 상영을 하니 관심있는 사람은 한번 보길 바란다.



덧글

  • 이준님 2009/07/06 20:50 # 답글

    1. 80년대 국영방송에서 한번 했고 몇년전에 EBS에서도 한번 했습니다.

    2. 리메이크는 쓰레기였지요. 어설픈 CG에 설정도 날려먹은 압박.
  • Equipoise 2009/07/06 20:51 # 답글

    EBS에서는 어제도 했었지요...
  • 시몬 2009/07/07 03:32 # 삭제 답글

    엔딩이 참 마음에 와닿네요.
  • Qui-gon 2009/07/07 03:33 # 답글

    신상옥 감독의 구미호는 왠지 특수효과가 많이 필요할 듯한 장면과 내용 전개는 갑자기 뚝 끊어버리고 유야무야 넘어가는 연출이... 인상적이었지요.
  • 메리오트 2009/07/07 17:27 # 답글

    공포라기보다는 멜로군요. 주말에 시간 나면 한번 봐야겠습니다. 마침 무료 상영이라니..
  • 잠뿌리 2009/07/08 08:15 # 답글

    이준님/ 리메이크는 정말 욕을 많이 먹었다고 들었습니다.

    Equipoise/ 그리고 보니 EBS는 참 이런 영화를 자주 틀어주는 것 같더군요.

    시몬/ 엔딩이 참 짠합니다.

    Qui-gon/ 그리고 보니 그 구미호도 처음 개봉했을 당시엔 꽤 화제였고 소설판도 따로 나왔었지요.

    메리오트/ 무료 상영이라 참 좋지요.
  • 하로기 2009/07/17 22:48 # 삭제 답글

    반가워요~ 매우매우 낯익은 이름입니다. 잠뿌리님...ㅎ.ㅎ
    언제나 광활한 영화 정보에 경악을 금치 못하겠네요. ㅋ.ㅋ
    매우 자주 들르겠습니다요~
  • 잠뿌리 2009/07/18 20:00 # 답글

    하로기/ 아 하로기님이시군요. 웹툰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호러 타임즈 때부터 즐겨 보고 있습니다 ㅎㅎ 잘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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