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쟁호투 (龍爭虎鬪: Enter The Dragon, 1973) 액션 영화




1973년에 로버트 클루즈 감독이 만든 액션 영화. 당대 제일의 액션 배우인 이소룡(브루스 리)가 미국에 건너가 만든 작품으로, 이전에 무성 영화 시절 그린 호넷에 출현한 적이 있지만 주인공으로 나오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미국에서 만든 영화 기준으로)

내용은 외딴 섬에 기거하며 겉으론 3년에 한번 무술 토너먼트를 개최하지만 속으론 마약 제조에 인신매매를 하며 부정을 일삼는 국제 범죄자 한을 체포하기 위한 확실한 증거를 찾기 위해 미국 정보 기간이 소림사에서 무예 수련을 하며 살던 리에게 의뢰를 하는데, 마침 그 한이 여동생의 죽음과 관련이 있으며 소림사가 가르친 도리를 저버린 타락한 무술인이란 사실을 알고 의뢰를 받아들여 그 섬으로 떠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일단 줄거리를 보면 주인공은 리지만 가만히 보면 이 작품의 주인공은 한 명이 아니다. 빚 독촉에 시달리다가 그냥 다짜고짜 섬으로 간 로퍼가 또 다른 주인공이다. 로퍼나 그의 아프로 머리 흑인 가라데 파이터 윌리엄은 도대체 왜 나왔는지 모를 비중과 존재감을 가지고 있지만 이게 어떻게 보면 미국에서 만든 영화로서 주요 관객층이라 할 수 있는 미국인의 감성을 충족시키기 위해 그런 걸지도 모른다.

일단 이 작품이 미국에서 나왔고 이소룡의 작품 중 미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건, 미국적 색이 강하기 때문이다. 장르적으로 봐도 무술 영화가 아니라 첩보 영화에 가깝다.

이소룡이 소림사 출신이면서 중국의 정신과 혼을 무예로 승화시켜 권선징악을 펼치는 게 아니라, 마치 007처럼 정보 기관에 의뢰를 받고 섬에 몰래 잠입해 야밤에 타이즈 하나 걸치고 대활약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007적인 해석을 해보자면, 여자 꼬셔서 쿵짝쿵짝 놀다가 악당 보스한테 불려간 이후에도 끝까지 별 탈 없이 살아남는 부분은 가슴 털 수북한 로퍼가 맡은 것 같고 첩보원으로서 활약을 하고 악당 보스와 최후의 결전을 하는 액션 부분은 리가 맡은 것 같다.

엑스트라를 제외한 주역과 조연은 동양인과 서양인이 거의 반반씩 나온다. 하지만 그 중에 단연 으뜸인 건 주인공 이소룡의 존재감이다.

미국 정서를 위해 등장한 듯 보이는 로퍼 일행은 다른 나라 사람이 볼 때 그다지 메리트가 없지만 어디까지 이 영화의 주는 이소룡의 화끈한 액션이기 때문에 다른 모든 문제점을 커버할 수 있다.

특유의 괴조음을 내며 날아차고 돌려차고, 봉, 단봉, 쌍절곤 등을 휘두르며 상대의 목을 잡아 꺾고 뛰어 올라 찍고 보통 이소룡 영화에서 나온 모든 액션이 여기서도 다 나온다. 줄거리만 보면 내용이 무지 단순하고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액션 영화라고 할 수 있는데 주연이 이소룡이란 사실 하나만으로 영화 자체의 힘이 달라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소룡이 제시한 총이나 특수한 무기를 쓰지 않고 오로지 단련된 육체와 맨 주먹만으로 악당들을 때려눕히며 대 활약하는 액션 히어로는 미국인이 갖고 있는 동양의 신비를 충족시킴과 동시에 '쿵후'라는 새로운 아이콘을 만들어낸 것이다.

기존의 액션 영화가 맨손 격투는 그냥 단순히 퍽퍽 치고 날아가는 걸로 끝났다면 용쟁호투로 인해 서양에도 쿵푸가 새로운 아이콘으로 뜨면서 이후의 영화에서도 동양 무술이 들어간 경우가 많아졌다.

이 작품의 악당 보스 미스터 한도 동양인 배우로 나름 인상 깊다. 소림사를 배시한 제자로 국제 범죄자며, 오른 손이 없어서 손목에 쇠로 된 손, 곰발바닥을 연상시키는 손톱, 칼날을 이어 붙여 만든 포크(?) 따위를 달고 천하의 이소룡 몸에 상처를 내며 싸웠기 때문이다.

이 미스터 한은 아무래도 애니메이션 가제트의 클로 박사에 영감을 준 것 같다. 매화 철로 만들어진 오른 팔만 나와서 고양이를 쓰다듬다 화를 내는 그 양반 말이다. 이 작품에서도 미스터 한이 철로 된 손을 숨긴 검은 장갑으로 애완 페르시아 고양이를 쓰다듬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작품의 백미는 누구나 인정하는 거울 방의 대혈전. 사방이 거울로 막혀 있어서 자기 모습과 악당의 모습이 비추는 가운데 숨막히는 사투를 벌이는 게 무지 인상깊었다.

결론은 추천작. 이소룡의 첫 번째 미국 데뷔작이면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지만 시기상으로 그의 유작이 됐다. 이소룡이 동양인 뿐만이 아니라 서양인, 더 나아가 세계적으로 볼 때 전설의 배우로 그 이름을 남긴 건 이 작품 덕분에 그런 걸지도 모른다.

여담이지만 한국에 한 때 유행했던 싱하형의 얼굴 사진은 이 작품에서 이소룡이 여동생의 원수인 오하라가 쓰러지자 두 발로 폴짝 뛰었다가 콱 내리 찍으면서 짓는 표정을 가져다 붙인 것이다.

그리고 이번 작에서도 역시 성룡은 이소룡에게 봉에 맞아 나가 떨어지는 엑스트라로 출현했다. 정무문에서 성룡이 이소룡에게 맞는 씬을 찍다가 다쳐서 이후로 이소룡이 나름대로 신경 써주어 이런 저런 작품에 같이 출현하게 해주었는데 그래도 맨날 맞는 역이었다니 어쩐지 좀 슬프다.

덧붙여 맨 처음 검은 빤스 하나만 입고 심은하 머리 하고 나와서 이소룡과 이종 격투기 하다 키락 걸려서 탭 한 선수 역은 홍금보가 맡았다.

추가로 개인적으로 용쟁호투의 영제인 '엔터 더 드래곤'은 참 어감이 괜찮다고 생각하며, 무엇보다 이소룡의 괴성으로 시작하는 재즈 풍의 오프닝 음악이 정말 좋았다(이것도 가만히 들어보면 007 풍이라니까)


덧글

  • anaki-我行 2008/08/17 23:09 # 답글

    -극 초반 홍금보와 현재의 이종격투기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죠. 이소룡이 좀 더 오래살았으면 이종격투기스타일의 액션을 볼 수 있었을지도...^^;;

    -성룡 뿐만 아니라 홍금보, 원표, 임정영, 원화 등 칠소복 멤버가 엑스트라, 스턴트로 다수 참여했죠. 다만 찾을려면 눈을 크게 뜨고 화면 구석구석을 잘 살펴봐야...^^

    -이소룡 여동생이 죽는 장면에서 감독은 격투 중 옷이 뜯겨져 나가면서 가슴 노출을 원했지만 모영이 완강히 거부해 못 찍었다고 하더군요.
  • Mr.오션잼 2008/08/18 01:50 # 삭제 답글

    완전 미국식으로 나온 이소룡...하지만 나쁘지 않았습니다.
    홍콩에서 만든 영화에 비교해 봤을때 좀 더 세련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아, 물론 이전의 이소룡 영화를 폄하하는건 아닙니다;;
  • Mr.오션잼 2008/08/18 01:52 # 삭제 답글

    그러고 보니 잠뿌리님의 이소룡 주연 영화 리뷰는 정무문과 용쟁호투 뿐인것 같군요...다른 것도 보셨나요?
  • rumic71 2008/08/18 01:53 # 답글

    그린 호넷은 무성영화 시절 출연작이 아닙니다만...
    <용쟁호투>의 음악을 담당한 것은 랄로 쉬프린인데, 훗날 <미션 임파서블> TV시리즈 주제가도 그가 맡았지요. 한편 진짜 007 음악을 담당했던 존 배리는 <사망유희>의 음악을 맡았구요.
  • rumic71 2008/08/18 01:54 # 답글

    가제트의 클로 박사와 여기서 한의 모습 둘다 007에서 스펙터 두목 브로펠드의 모습을 따 온 것이지요.
  • 시무언 2008/08/18 03:58 # 삭제 답글

    UFC 회장인 데이나 화이트가 이소룡이 이종격투기의 아버지라 부르기도 했죠. 나중에 모탈컴뱃은 스토리나 컨셉이 용쟁호투를 빼다 박기도 했고...

    그리고 그 유명한 싱하형(...) 짤방의 출처도 이거고. 괜찮은 영화죠. 근데 액션씬 호쾌한건 정무문이 더 좋았다고 봅니다
  • 알트아이젠 2008/08/18 07:58 # 답글

    정말 거울의 방에서의 전투는 지금도 기억에 남습니다.
  • 잠뿌리 2008/08/19 08:43 # 답글

    anaki-我行/ 그 오프닝의 대결에서 이소룡이 홍금보를 암바로 꺾었던 게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Mr.오션잼/ 맹룡과강, 당산대형, 사망유희까지 봤습니다. 그린호넷은 자막이 없어서 보긴 했는데 내용 이해를 못했고요.

    rumic71/ 확실히 첩보물 음악 풍인게 그런 연유도 있었군요. 그린호넷은 컬러판으로 봤는데 이 감상을 쓸 때는 그린호넷 스틸컷이 흑백으로 나와서 무성 영화로 오해했었지요.

    시무언/ 싱하형 이미지가 이 작품에서 오하라를 밟아 죽일 때의 이소룡 표정을 가져다 쓴거지요. 그리고 보면 모탈컴뱃에 나오는 쟈니 케이지와 리우 캉이 이소룡의 특징을 나눠 받았군요.

    알트아이젠/ 거울의 방 전투 씬 정말 명장면이죠. 이소룡 전기 영화인 드래곤에서도 재현되었습니다.
  • 곧휴잠자리 2015/06/23 14:54 # 답글

    한을 연기했던 석견 분은 이소룡의 아버지 친구라 섭외했다네요. 촬영 당시에 입버릇처럼... 제가 아저씨보다 먼저 죽을것 같네요. 라는 말을 했다는... 물론 진짜 그렇게 됐지만요.
    여담이지만 저 존 색슨의 격투 연기는 드럽게 어설픕니다. ㅋㅋ
  • 잠뿌리 2015/06/25 15:37 #

    이소룡과 브랜든 리의 단명은 이소룡 가문의 저주라고까지 알려져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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