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남북녀 (2003) 한국 영화




서양에서 애절한 연인의 사랑을 그린 대표작으로 '로미오와 줄리엣'을 꼽는다면, 우리 나라에서는 '견우와 직녀'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드라마는 물론이고 영화에서도 상당히 많은 장르적 비중을 차지하는 로맨스 물에 있어 이러한 구도의 영화는 정말 셀수도 없이 많다.

이 작품 '남남북녀'도 그러한 수많은 로맨스물 중 하나로 기록될 것이라 본다.

줄거리를 간략히 요약하자면 연변의 고군 발군단에 참가한 남한측 청년 대표 '김철수'가 북한측 청년 대표 '오영희'에게 반해서 적극적인 댓쉬를 하면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정초신'감독은 일찌기 '몽정기'와 '자카르타'로 상업 영화 감각을 인정 받았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어설픈 북한 소재의 코미디에 로맨스 전개를 만들어 나갔다. 남한과 북한의 문화적 차이를 강조해야하는데, 거기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남한 쪽에 치우처지게 함으로써 스토리의 주축을 이루는 소재에 있어 균형을 잃어 완성도가 크게 떨어진다.

물론 이러한 경우, 실제로 북한에 가보지 못한 이상 재현하는 게 어려울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냉정하게 볼 때 그걸 무게 중심을 제대로 잡지 못할 거라면 애초에 그 소재를 채용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본다.

견우와 직녀란 설정이 분단된 남한과 북한, 그리고 각 나라를 대표하는 두 주인공은 부합이 잘 되지만 현실적 고증을 너무나 배재한 나머지 영화 자체의 격이 떨어져 보인다. 둘이 손을 잡고 도망가다가 공항에 들어가고 총기 난동을 벌였는데도 불구하고 단지 두 주인공의 아버지가 사임한 뒤에.. 수년 후 철수가 북한에 들어가 김정일 위원장이 참석한 공식 세미나에서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정식으로 프로포즈하는 건 진짜 너무 황당무계하다. 아무리 영화가 픽션이라고 해도 현대를 배경으로 했다면 최소한 기본적인 리얼리티를 살려야 마땅한 것이다. 보통 그와 같은 상황이면 아무리 고위층 자제라고 해도 옥살이나 총살형을 당했을 게 분명하다.

북한 소재 코미디면서, 북한 말투를 가지고 웃기다기 보단 한국 속어를 섞어 저질 말장난으로 개그를 하는 것 부터가 글러먹었다. 아예 대놓고 화장실 개그를 선보이는 영화라면 또 모를까 명색히 코미디 로맨스를 지향하면서 그러는 건 영 보기가 좋지 않다. 이러한 소재에 있어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언어 역시 엉망진창이라 북한 처녀 영희는 종종 남한어와 북한어를 번갈아 쓰며 대본의 부실함을 몸소 증명한다.

북한을 표현할 때 무조건 삼류 저질 깡패에다가 아무리 고위층이라고 해도 말투가 상스럽고 껄렁껄렁하게 만듬으로써 이 작품을 보는 사람들에게 있어 잘못된 지식을 전달할 수도 있는 맹점마저 가지고 있다.

또한 CG도 정말 쓸데 없는 곳에 많이 썼는데 그중 참 유치하고 황당한 걸 몇가지 뽑자면 별 것 아닌 일에 광속 효과로 움직이는 장면과 공항에서 철수가 총기 난동을 부릴 때 천장에 데고 총을 쏘는데 별 다른 액션 하나 나오지 않으면서, 괜히 쓸데 없이 천장으로 날아가는 총알을 클로즈업 해주는 장면이다. 거기다 영희는 자신에게 작업을 걸던 남자에게 와이어에 의지한 썸머솔트 킥을 날려 쓰러뜨리거나, 철수에게 선물로 받은 통닭을 맨 손으로 4등분 하는 등등 촬영 기법에 있어 영화 보다는, 애니메이션도 아닌 거의 만화책에나 나올 법한 표현을 한다.

애초에 상황 설정부터 리얼리티가 없는데 행동마저 만화 기법을 사용함으로써 영화 자체의 현실성이 더욱 떨어져 납득이 안가는 것이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그런 방식을 채택했는데도 불구하고 큰 재미가 없다는 사실이다.

그냥 단순히 매일 방영하는 시트콤의 특집을 스크린으로 상영했다는 느낌이 든다고나 할까? 논스톱에 출현해 인기 스타덤에 오른 '조인성'이 주인공인 철수 역을 맡았는데 대본 상의 문제는 둘째치고 지나치게 가볍고 오바스러운 연기로 인해, 역시 시트콤 연기 이상을 뛰어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히로인 영희 역의 '김사랑'은 그래도 조인성 보다 나은 연기력을 보여주지만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영화 자체가 한국 영화계에 기본 공식으로 작용한 코미디+감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새로운 시대나 감각은 전혀 느낄 수 없고 감동 또한 전무하다. 단지 감동의 포인트를 두 남녀의 쉽게 이룰 수 없는 사랑이란 것이라 볼 때 너무나 밋밋하고 또한 가볍다.

결론적을 내리자면 정초신 감독이 몽정기로 재미 좀 본 모양인지, 지금으로선 민감한 문제이자 우리 민족이 평생 풀어야할 숙제인 남북문제를 몽정기의 어린 시각으로 접근해 인기 스타 둘을 동원한 질낮은 상업영화가 됐다. 그래도 비록 엄청 삼류틱하지만 중국 연변에 가서 직접 촬영한 노력 하나 만큼은 높이 사주고 싶다.

조인성이나 김사랑 같은 인기 스타의 팬 정도에게 권해주고 싶긴 하지만 보통 사람에게는 킬링타임도 되지 못할 것이라 본다. 사전 지식을 갖추고 보면 지식의 고문을 당할테고, 아무 생각이 없이 봐도 지루할 것이다.

여담이지만 개그 우먼 '조혜련'과 여성 댄스 그룹 샤크라의 멤버 '황보'가 까메오로 출현한다.


덧글

  • 정호찬 2008/08/02 00:22 # 답글

    이 영화와 관련된 건 김사랑 빼고 다 쏴죽여버리고 싶은 1人.
  • Wishsong 2008/08/02 01:49 # 답글

    이 영화는 남북한 관계를 다룬 영화 중에서 '무거움'이 빠지고 통속적인 주제로 나아간 초기 작품 중 하나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시무언 2008/08/02 03:51 # 삭제 답글

    뭔가 아니란 느낌이 드는군요(...)
  • 이준님 2008/08/02 16:27 # 답글

    한가지 다행인건 북조선 고위 간부로 나온 탤런트가 소싯적 괴작 "지금 평양에선"에서 오백룡 원수로 나온 분이라는 거지요. 근데 그때 그 연기를 안 보여주고 너무 점잖아서 안습이었습니다
  • 잠뿌리 2008/08/02 21:30 # 답글

    정호찬/ 해당 배우들의 흑역사가 될 것 같습니다.

    Wishsong/ 그 점은 꽤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겠군요.

    시무언/ 스토리의 문제인지 참 막장인 게 많았지요.

    이준님/ 헉, 그런 바하인드도 있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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