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The Fog, 1980) 존카펜터 원작 영화




내가 어렸을 때도 그랬고 머리가 굳은 지금도 그렇지만 가끔 무슨 날이 되면 소독차가 나타나 동네 전체를 돌아다니며 하얀 연기를 뿜어댄다. 아이들은 꺄르르 웃으며 그 연기를 뒤쫓아가는데 나 또한 어렸을 때 그랬던 시절이 있었다.

'존 카펜터'감독이 만든 이 작품. '더 포그'는 한국에서 '안개'란 제목으로 비디오가 출시됐고 KBS 1TV에서 방영할 때는 '안개 속의 음모'란 제목이 붙었는데.. 내가 이 영화를 처음 본 게 소독차 연기를 쫓아다니던 어린 시절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그 당시엔 상당히 덜덜 떨었던 기억이 난다(물론 머리가 굳은 지금은 별 감흥이 없다)

줄거리를 간략히 설명하자면, 안토니오 베이란 작은 마을에서 100주년 기념 행사를 앞두고 있는데 이상한 일이 생기면서 수수께끼의 안개가 끼면서 바다에 나가 있던 배가 행방불명됐다가 거기 타고 있던 선원이 처참한 몰골로 죽어서 돌아온 이후 시작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의 공포 포인트는 바로 안개다. 안개가 자욱히 끼면서 누가 막 문을 두드리는 것 부터 시작해, 안개 속에서 100년 전에 죽은 문둥이 귀신들이 불쑥 나타나 검으로 쑤시고 잘라 죽이며 갈고리로 배를 갈라 몸 속에 해초를 가득 채우는 등등 직접적인 묘사가 나오는 건 아니지만 상당히 섬뜩한 설정을 가지고 있다.

기본적으로 문둥이 망령들은 좀비와 유령을 합친 듯한 느낌이 들게 만들지만, 오직 안개 속에서 움직이기 때문에 더욱 무섭게 다가온다.

할로윈을 만든지 2년 후에 바로 나온 지라, 그때와 마찬가지로 감독이 음악도 같이 맡은 지라, 그러한 요소가 영화 분위기에 딱 맞아 떨어져서 상당히 괜찮다(하지만 역시 존 카펜터 영화 bgm의 진수는 할로윈의 테마다!)

할로윈의 히로인인 호러 퀸 '제이미 리 커티스'가 재등장하고, '히치콕'감독의 '사이코'에 등장해 충격의 샤워실 살인 사건의 희생자가 되며 당 시대를 풍미한 호러 퀸이자 실제로 제이미 리 커티스의 어머니이기도 한 '자넷 리'도 나온다. 하지만 아쉬운 건 둘 다 별로 존재감이 없는 조연으로 나온다는 것이고, 진정한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건 존 카펜터의 부인인 '아드리언 바르보'다. 아들 하나를 든 등대지기이자 라디오 DJ '스티비 웨니' 역으로 열연을 하는데 안개가 안토니오 베이 마을을 덥치는 걸 실시간 중계하는가 하면, 아들 걱정을 하면서도 자신의 사명을 잊지 않는 것이 참 가상하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백미라고 생각하는 부분은, 극중 '엘리자베스'와 '닉'이 침대에 누워 있는데, 문 바깥에서 안개가 피어오르면서 누가 불쑥 튀어 나와 문을 두드리는 장면이다. 사실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어렸을 때 KBS-1TV에서 방영할 때 엄청 무섭게 봤다. 그때 번역된 문구로는 시계가 탁 깨지면서 '밤 12시에서 새벽 1시까지는 죽은 자가 활동하는 시간입니다'라는 라디오 나레이션이 나오기 때문에 굉장히 섬뜩했다. 라디오 DJ '스티비 웨니'가 안개 낀 등대 꼭대기에서 두 명의 망령에게 공격 당할 때 다른 망령들이 교회를 습격하는 장면의 교차 편집 또한 훌륭하지만 그보다 더 멋진 장면은 최후의 여섯 번째 희생자가 나오는 라스트 씬이다. 그 장면은 국내 판에서도 잘리지 않았기 때문에 딱 보고 전율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일단 이 영화의 장르는 슬래셔나 스플레터, 고어 물이 아니고 희생자도 달랑 여섯명 밖에 나오지 않는데 안개 효과에 중점을 둔 탓에 잔인한 연출이 배제되어 있으니 할로윈과 같은 영화를 기대하고 보면 낭패를 볼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일단 꽤 볼만한 영화라고 생각하며, 어렸을 때 소독차에서 뿜어대는 하얀 연기를 쫓아다닌 기억이 있는 사람에게 한번쯤 권해주고 싶다.


덧글

  • 시무언 2008/06/15 04:46 # 삭제 답글

    마지막 희생자 장면은 쇼킹했습니다
  • 잠뿌리 2008/06/15 23:01 # 답글

    시무언/ 어렸을 때 그걸 처음 봤을 땐 참 그날밤 잠을 이루지 못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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