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 (Carrie, 1976) 스티븐 킹 원작 영화




'스티븐 킹'이 1974년에 발표한 첫 장편 소설이자 무명이었던 그를 단숨에 최고 인기 베스트셀러 작가로 만들어준 작품을 원작으로 삼아, 2년이 지난 1976년에 훗날 '언터쳐블' '미션 임파서블'등으로 유명한 '브라이언 드 팔마'감독이 영화로 만들었다.

내용은 '캐리 화이트'라는 왕따 소녀의 복수기라고 압축 요약 할 수 있다.

스티븐 킹은 이 작품의 원작을 처음 썼을 때 비록 무명 작가이긴 했으나 현직 고교 교사였기 때문에, 왕따가 가진 고통과 극단적인 상황을 아주 잘 표현했다.

캐리는 여학생 샤워실에서 첫 생리를 하게 되지만, 성교육을 받지 못해 과다출혈로 죽을 거란 위험에 사로 잡혀 미친 듯이 비명을 지르는데 그걸 본주위 학생은 도와주기는커녕 오히려 야유를 퍼붓는다. 거기다 어머니는 사이비 종교론자로 성경 말씀을 광적으로 신봉하며 성 관계를 죄악으로 여겨서.. 캐리가 어렸을 때부터 학대해 왔으며 무슨 잘못을 하면 어두운 옷장 속에 가두어 놓고 신께 잘못을 빌라고 강요하니, 진짜 이보다 더 절망적인 사정을 가진 70년대 영화의 여고생 주인공은 없을 것이다.

첫 생리를 한 뒤 예전부터 가지고 있던 초능력이 더 강해졌는데, 만약 이 작품이 'X-MEN'이었다면 신세대 아메리카 히어로로 격상됐겠지만 원작자가 스티븐 킹인데다가 장르가 공포 영화다 보니 그런 능력은 오히려 비극적인 결말을 예고했다.

작품의 전반 부와 중반 부는 공포 영화라기 보다는 오히려 사춘기 소녀의 성장기 물에 가까운 전개로 진행된다. 왕따 당하는 이유인 캐리의 우울하고 소극적인 성격의 근본적인 원인을 되짚으면서 성장물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극 후반부는 다르다. 스티븐 킹 답게 주인공을 매우 절박한 상황에 몰아 넣었다. 난생 처음 댄스 파티를 맞이하는 캐리가, 어머니와 싸우면서도 겨우 승락을 받아 재봉틀로 직접 짠 드레스를 입고 멋진 파트너와 함께 파티에 참석하는데 캐리를 싫어하는 여학생의 계략으로 인하여 정말 자기 인생 최고의 순간이, 1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만에 최악으로 바뀌어 이성이 끈이 뚝 끊어지는 장면은 거의 신기에 가깝다.

영화의 관점에서 보면, 이 장면 하나만으로 캐리는 명작 공포 영화가 되기에 충분하며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이 얼마나 대단한 감독인지 아주 잘 알 수 있다. 그 짧은 시간에, 슬로우 모션으로 촬영된 캐리의 행복한 얼굴과 그걸 지켜 보던 착한 친구가.. 캐리의 머리 위 천장에 설치된 양철통을 목격하고 막 캐리를 끌어 내리려던 순간 돼지피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려온다.

최고의 행복이, 최악의 절망으로 바뀐 순간 마음 속에 내제된 분노가 폭발하는 이 순간의 영상미는 진짜 전율이 느껴질 정도다. 이 장면을 보기 전까지 느낀 지루함이 단번에 날아가는 막강한 파워를 가지고 있다.

원작자인 스티븐 킹도 그렇지만, 이걸 또 영상 예술로 승화시킨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돼지 피를 뒤집어 쓰는 씬 만큼이나 유명한, 파티장 대학살 씬은 지금 다시 보면 특수효과가 약간 유치한 느낌이 들기 때문에 그 참맛을 알고 싶다면 원작 소설을 구해보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한다. 원작 소설은 국내에서도 벌써 두 가지 버젼으로 번역 출간된 바 있다.

결론을 내리자면, 초중반의 지루함을 견디고 막판의 강렬한 충격을 경험하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할 만한 작품이다.

샤이닝과 더불어 스티븐 킹의 원작을 바탕으로 만든 공포 영화 중에서 인정 받는 몇 안 되는 작품이다(쇼생크 탈출과 그린마일은 공포영화가 아니니 제외)

이 작품 자체는 높은 평가를 받지만, 이후 90년대에 나온 '캐리 2'는 스티븐 킹의 원작과 아무런 상관도 없고 또 감독도 바뀌었기 때문에 혹평을 면치 못했으며 2002년에 TV 영화로 리메이크됐지만 원작의 완성도를 전혀 살리지 못하고 사춘기 소녀 캐리가 D&D에나 나올 법한 미티어 스트라이커를 쓰는 만행을 저질러 욕만 졸라 먹다가 소리 없이 사장되버렸다.

여담이지만 오프닝에서 캐리가 사워를 하다가 하혈을 하자 물이 막 피로 번지는 씬은, 사이코의 그 유명한 욕실 살해 시퀀스를 오마쥬한 것이다.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은 히치콕 감독의 신봉자라서 자신의 여러 작품에, 히치콕의 작품을 오마쥬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 추가로 몇 마디 더하자면, 이 작품에서 캐리에게 돼지피를 뿌린 못된 여학생의 불량한 남자 친구를 맡은 배우는.. 바로 무명 시절의 호리호리하고 젊은 '존 트라볼타'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여기서 나온 존 트라볼타는 무명 시절이라 대사도 거의 없고 비중도 적은 삼류 껄렁패 악당으로 나와서 졸라 허무하게 죽는데.. 수십년이 지난 다음에는 인기 스타가 됐기에 DVD로 재발매된 버젼에는 커버에 그 이름이 대문짝 만하게 붙어 있다는 것이다.


덧글

  • 시무언 2008/05/29 14:41 # 삭제 답글

    제가 가장 통쾌해했던 다른 영화의 장면이라면 오딧세이에서 오딧세우스가 자신의 왕국을 유린하던 아내의 구혼자들을 일방적으로 다 학살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정말 8초 9초 이런거 없이 사정없이 다 박살내는게 통쾌하더군요. 지금까지 다른 영화등에서 툭하면 용서하고 그냥 싱겁게 끝내는걸 많이 봐서 그런지 아들 텔레마커스가 자신을 두들겨 팬 남자부터 죽이기 시작하는게 잔인하다고 느껴지기 보단 정말 통쾌했습니다
  • 송이 2008/05/29 17:23 # 삭제 답글

    재밌어보이는군요.
  • 이준님 2008/05/29 19:08 # 답글

    1.Rage라는 속편도 있지요. 나오지도 않는 캐리의 아버지가 어디선가 뿌렸던 다른 씨 -_-;;; 가 또 다른 소녀를 만든다 어쩐다 하는 스토리입니다. 이건 아주 아주 뒤에 나온 작품이라서 몰카를 이용한다는게 다르지요

    2. 여자 배우중에 드 팔마 감독과 나중에 결혼하는 여자가 악당 두목으로 나옵니다.(완전히 면도칼 고딩틱합니다. -_-;;) 이 배우는 1941이나 필라델피아 실험 같은 영화에도 나오고 드 팔마의 다른 영화에서 난도질 당하고 죽기도 하지요. 팬들에게는 로보캅의 연인이라고 더 잘 알려졌지만요

    다른 불량소녀중 하나가 스필버그 감독의 첫 부인입니다. 이 여자는 속편에서는 중년 여성이 되서 이때의 경험때문에 왕따 학생을 구제하려는 선생으로 나옵니다.(예. 1편의 장면이 상당히 많이 나옵니다) 물론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머리가 뚫려서 죽지만요
  • 잠뿌리 2008/05/29 23:28 # 답글

    시무언/ 흥미로운 영화군요.

    송이/ 재밌는 영화입니다.

    이준님/ 어쩌면 드 팔마 감독이 부부싸움 하고 나면 마누라를 캐스팅하는 걸지도 모르겠네요.
  • 잠본이 2008/05/29 23:32 # 답글

    미티어 스트라이크라니 상상이 안가는군요 OTL
    존트라볼타는 인생역전이라 해야 할지 어째야 할지;;;;
  • 지나가던이 2008/05/30 00:55 # 답글

    주인공역의 시시 스파이섹은 극중 왕따와는 전혀 다르게 고딩시절 퀸카였다더군요. 프람(졸업 무도회) 퀸이다고 합니다.
  • 잠뿌리 2008/05/31 00:08 # 답글

    잠본이/ 존 트라볼타 이후에 잘 나가다가 말년엔 좀 막장이 됐죠. 영화 배틀 필드도 대박 망하고요.

    지나가던이/ 시시 스파이섹이 실제 퀸카였다면 왕따 연기도 참 신선하게 다가왔겠네요.
  • ㄷㄷㄷ 2008/06/01 01:54 # 삭제 답글

    저 이거 한국에도 출시되어 있나요?
    제가 소설판은 읽었는데 영화판은 구할 길이 없네요
  • 잠뿌리 2008/06/02 12:05 # 답글

    ㄷㄷㄷ/ 영화판은 한국에 출시됐습니다. 꽤나 오래전에 비디오로도 나왔고 광고 포스터도 무섭게 만들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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