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수의 날 (Eldia De La Besta, 1995) 희귀/고전 호러 영화




1995년에 스페인에서 '알렉스 드 라 이글레시아'감독이 만든 영화로 95년 스페인의 아카데미상인 고야상 6개 부문을 수상하고 96년 프랑스 제라르메 판타스틱 영화제, 96년 브뤼셀 국제 판타지 영화제 최우수 작품상 수상에 대중성과 작품성이란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아서 헐리웃에 입성하는 발판을 마련한 작품이다.

내용은 25년간 요한 계시록을 공부하다가 세계 종말의 때와 적그리스도의 탄생일을 알게 된 한 신부가, 그 일이 벌어지는 장소를 몰라서 스스로 타락을 해 악마와 만나서 세계 평화를 위해 자신의 영혼을 팔기로 하면서 여러 가지 소동을 일으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의 스타일을 간략히 요약하자면, 극장판 개봉의 광고 문구인 돈키호테. 단 네 글자로 축약할 수 있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미친놈들이 파티를 맺어 세계 평화를 위해 분투하는 맛이 갔으면서도 치밀하고 또 유쾌하기까지 한 작품이다.

사타니즘을 신봉하는, 장발에 코걸이를 한 덩치 큰 메탈 음반 가게 주인과 TV에서 굉장히 유명하지만 온갖 사기와 뻥을 치면서 대중을 현혹시키는 사기꾼 점성가. 그리고 요한 계시록의 비밀을 알아내 스스로 타락하려고 발버둥치는 어리숙한 신부 등. 정상적인 인물은 하나도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기본적인 장르를 정의하자면 엑소시스트와 오멘과 같은 오컬트 영화다. 종말론과 악마, 악마 소환 의식 등의 흑마술 오컬트가 주된 설정이지만, 영화의 주체는 이 유쾌한 미치광이들의 대활약이다.

영화 초 중반까지는 진짜 생 미친 짓을 다하면서도 진짜 간간이 웃음이 터져 나오게 해준다. TV를 보고 악마 소환 의식을 치르기 위해 사이비 점성가를 찾아간 신부와 레코드 가게 주인. 점성가는 졸라게 얻어 터지고 꽁꽁 묵인 채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대충 생각나는데로 마구 지껄여서, 바닥에 나이프로 마법진을 만들고 환각제 대신 마약을. 여자의 피라고 해서 애인을 죽이려고 하기에 처녀의 피를 구해 오라고 시켜서 어영부영 의식을 치르는데.

등장 인물뿐만이 아니라 관객들까지 포함해, 모든 이들의 예상을 깨고. 정말 놀랍게도 진짜로 흑염소의 형상을 한 악마가 튀어나와. 두 다리로 벌떡 일어나 울부짖는다.

이 부분은 진짜 굉장히 유쾌하고 또 재미있는 장면이다. 돈키호테가 단순히 미친 기사가 아니라 그의 환상은 실제란 걸 상상해보라. 이 얼마나 멋진 반전이란 말인가?

제목인 야수의 날이 나타내는 것은 종말의 날. 이 작품은 매우 치밀하다. 악마에 대한 명확한 개념을 세워 두었고 또 그걸 매우 충실하게 지키고 있다.

악마는 신의 그림자. 그래서 신을 따라하길 좋아한다. 포스터에서 두 개의 뿔을 가진 악마의 그림자가 십자가 형상을 하고 있는 것. 그리고 주인공인 신부가 악마를 만나기 위해 스스로 타락하는 것. 그 두 개만 봐도 이 작품의 주제 의식은 분명히 알 수 있다.

사건 진행 방식은 종말의 날과 악마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단순히 미친 짓만 하는 건 아니고. 거의 추리 영화에 가까운 수사 기법을 활용했다. 마드리드의 크리스마스 당일이란 날짜 개념과 장소와 달리 이 바닥은 지옥이다!란 말이 저절로 생각이 날 정도로 미친 범죄 도시를 배경으로 한 것과 주인공 일행의 기괴한 행동과 그들이 품은 환상의 구체화 등 전형의 틀에서 벗어나 다양한 방면으로 재미를 주기 때문에 그 많은 상을 수상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오로지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움직이는 주인공 일행이 있기에, 영화의 이야기는 결코 엇나가지 않고 똑바로 앞을 향해 나아가기에 몰입도가 높다.

적그리스도의 탄생을 막고 세계를 구했음에도 불구하고 부랑아로 전락해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며, 또 말할 수도 없어서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지만. 그래도 간신히 살아 남아 둘이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모습은 긴 여운을 남겨준다.

결론은 대추천작. 돈키호테를 종교 오컬트 호러 영화에 접목시켰다는 평 하나로 이 영화가 어떤 작품인지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담이지만 이 작품은 상당한 재미와 작품성을 가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극장 개봉을 했을 때 흥행 참패를 면치 못했다. 그 이유를 가만히 생각해 보면 국내에는 호러 영화의 역사가 짧고 또 일반 대중이 즐기는 호러 영화의 장르는 극히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장르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아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하나 더. 전국의 방청객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며 방송 프로그램에 나와 사이비 오컬트를 늘어놓으며 ARS 서비스로 미래에 대한 점을 쳐주는 사이비 점성가 카반의 모습은, 수년 후에 나온 일본 만화 '20세기 소년'에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싶다.

포스터에서 악마의 그림자가 십자가로 비추는 건, 오멘의 포스터에서 아이의 그림자가 악마의 그림자로 비추는 것의 오마쥬인 것 같다.


덧글

  • 시무언 2008/04/29 13:08 # 삭제 답글

    보고싶은데 아직까지 못구해본 작품이군요ㅠㅠ
  • dethrock 2008/04/29 16:36 # 답글

    메탈 음반 가게 주인 아저씨가 인상적이었습니다.
  • 잠뿌리 2008/04/30 08:12 # 답글

    시무언/ 국내에선 좀 희귀한 축에 속하지요.

    dethrock/ 그 아저씨가 제일 웃기지요.
  • 시몬 2008/05/19 02:33 # 삭제 답글

    어둠의 경로를 통해서 예전에 본 적이 있습니다. 중반에 악마소환할때 솔직히 정말로 악마가 나올거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덜컥 나와버려서 놀랬죠.
  • 잠뿌리 2008/05/19 09:28 # 답글

    시몬/ 그 장면이 이 영화의 백미입니다.
  • 헬몬트 2009/06/08 23:17 # 답글

    당사자들도 나오니까 되려 황당해서 ;;
  • 잠뿌리 2009/06/11 10:16 # 답글

    헬몬트/ 그래서 보는 사람도 충격이 배가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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