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발 (The Black Hair, 1974) 희귀/고전 호러 영화




1974년에 장일호 감독이 만든 작품으로 한국과 홍콩의 합작품이다.

내용은 중국을 배경으로 평생을 사모한 여인 수련를 얻기 위해 그녀의 아버지를 살해한 전력을 가진 설관중이 일신의 부귀영화를 위해 그녀를 버리고 양가집 규수와 혼인을 맺는 과정에서, 처제를 기방에 팔고 처남에게 누명을 씌우는 것도 모자라 아내 수련이 약을 가장한 독을 먹는 것을 알면서도 방치한 뒤 그녀를 살해하고 간통죄까지 뒤집어씌우는 천인공노할 죄를 저지르는데 죽은 아내가 귀신이 되어 돌아와 복수한다는 이야기다.

이 작품은 개봉 당시 인기도 많았고 관객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사실 알고 보면 그런 사실 자체가 좀 부끄럽게 느껴질 정도의 표절작이다.

메인 갈등을 압축하자면 장인을 살해해서 얻은 아내조차 배신하고 새 장가를 가서 부귀영화를 얻으려던 남편이, 아내의 원귀에 의해 복수 당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구조가 일본의 유명한 괴담이자 영화로도 몇 편이나 제작된 바 있는 '요쓰야 괴담'을 그대로 베꼈다.

물론 원작과 다른 설정과 연출도 몇 가지 들어가 있긴 하고 저런 근본적인 설정 자체가 요쓰야 괴담의 표절로 남편이 출세를 위해 아내를 배신하고 아내의 원귀에게 시달린다 라는 설정은 흔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남편을 눈독들인 부잣집에서 보낸 독약을 복용하고 아내의 얼굴 반쪽이 썩어문드러지면서 머리카락이 뽑혀 흉물스럽게 변한 뒤 죽고 나서 귀신이 되어 돌아오는데 그때부터 환영에 시달리며 처갓집 사람들을 도륙한다는 설정은 요쓰야 괴담의 스토리를 복사해서 붙여넣기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렇게 철저하게 베껴놓고 개봉 당시 흥행 성적도 좋고 작품 자체의 평가도 좋으며 지금 현재에도 한국의 고전 호러 영화로 손꼽힌다는 사실이 그저 부끄러울 따름이다.

고양이에게 피를 먹여 복수를 시키는 원한의 공동묘지 같은 경우, 일본의 괴담이면서 동시에 영화로도 나온 적이 있는 바케네코(괴묘)에 근원을 두고 있긴 하지만 엄연히 원작 괴담과 영화와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영화였다.

그런데 이 작품은 정말 표절이란 말에 이론의 여지가 없다.

사실 이 작품에서 얼굴이 문드러진 수련 귀신이 주무기로 사용하는 게 머리카락인데 이게 1966년판 요쓰야 괴담에선 안 나오지만 1959년에 무성 영화로 처음 나왔던 요쓰야 괴담에서는 나오니 이것도 사실 완전 오리지날은 아닌 것이다.

한국 홍콩 합작 영화로 중국 배경에 한국 배우와 홍콩 배우가 출현한다는 무국적인 부분은 원래 70년대 한국 영화의 풍토가 그러했으니 크게 걸리적거리는 부분은 아니지만 요쓰야 괴담을 알고 보면 정말 낯 뜨거운 영화다.

요쓰야 괴담 원작과 다른 점이 몇 가지 있다면, 일단 원작에서 하급 무사 이에몬이 오이와를 얻기 위해 장인을 살해한 걸 표절한 주인공 설관중이 수련과 결혼을 하기 전에 그의 아버지를 살해하는 게 설정으로만 나오고 그녀가 병든 이후부터 영화가 시작된다는 것이며, 본래 원작에서는 귀신이 된 아내 오이와의 누나가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지만 여기서는 여동생 목련으로 나오며 형부에 의해 기방에 팔려 나가는 것도 모자라 형부의 계략으로 약혼자가 누명을 쓰고 죽을 판이라 평소 자신을 눈독들인 태수에게 몸 바칠 뻔하지만 수련의 귀신이 나타나 목련 예비 부부를 구해준다는 점과 어차피 결론은 패륜 남편의 최후로 일단락되지만 그래도 마지막에 도사의 존재를 넣음으로써 설관중에게 마지막 참회의 기회를 주는 것 정도가 다른 점이라 할 수 있겠다.

결론은 미묘. 요쓰야 괴담의 표절이란 관점에서 보면 정말 낯 뜨거운 영화지만 요쓰야 괴담을 모르고 봤을 땐 충분히 당시 관객들이 호평할 만 하다고 생각한다.

안타까운 건 이 작품이 요쓰야 괴담 표절이란 사실을 당시 관객들은 전혀 몰랐고 지금 현재도 관련 글 중에 방송국 관계자나 컬럼리스트의 글에도 잘 언급이 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덧글

  • 크루세닌 2008/04/14 13:07 # 답글

    글 잘 읽었습니다.
    영화내용이 어쩐지 많이 본 듯하다고 생각했는데.. 괴~아야카시~라는 일본애니에서 다룬 바로 그 요츠야 괴담이었군요 :)
    이야기 자체는 그리 무섭지않은데 비주얼(?)때문에 섬찟한 애니였습니다;ㅁ;
  • 잠뿌리 2008/04/14 17:53 # 답글

    크루세닌/ 아야카시에 나오는 요츠야 괴담 에피소드는 고퀄리티더군요.
  • 遊異 2008/04/14 18:23 # 답글

    밸리에서 왔습니다~ :)
    전 흑발이란 제목을 보고 수업시간에 배웠던 일본영화! 라고 생각해서 눌렀는데 의외로 한국영화라 깜짝 놀랐네요. 내용 뿐 아니라 제목까지 똑같다니 정말 놀랍습니다.
  • 잠뿌리 2008/04/15 03:09 # 답글

    遊異/ 아마도 일본 영화 흑발은 1974년에 나온 괴담 영화의 첫번째 에피소드가 아닐까 싶습니다^^; 괴담의 흑발도 비슷한 내용이거든요.
  • 이준님 2009/06/19 13:22 # 답글

    요츠야 괴담 표절은 괴작 옴니버스 영화 "삼국여한"의 일본판에서도 그대로 나옵니다.
  • 이준님 2009/06/19 13:26 # 답글

    고양이에게 피(혹은 살)을 먹여 복수를 다짐한다는 설정은 최근에 외국에서 우연히 발굴한 전설의 명작(덕화 형님 아버지와 전원일기 할마시의 몸바치는 연기가 일품인) "살인마"에서도 그대로 사용되지요. 부처님 부활광선의 압박이 심하긴 한데... 이 작품의 리메이크가 전에 말씀드린 "(말로만) 목없는 여살인마"입니다. --
  • 잠뿌리 2009/06/19 18:38 # 답글

    이준님/ 부처님 부활광선 보고 싶네요. 여곡성의 가슴판 만자 광선에 버금갈 것 같아 보입니다.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통계 위젯 (화이트)

155873
6129
9594999

메모장

잠뿌리의 트위터